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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백두산 천지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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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백두산 천지 분할

입력
2006.09.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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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을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한 치도 축소할 수 없다." 구한말 백두산 일대 국경협상 조선측 대표였던 토문감계사 이중하(李重夏)가 1887년 2차협상(丁亥담판)에서 밝혔던 결연한 의지다. 당시 청측은 두만강의 지류인 홍단수(洪湍水)나 서두수(西豆水)의 원류를 찾아 국경으로 정하자고 요구했다.

2년 전 1차협상(乙酉담판)에서 백두산 정계비 상의 토문강은 송화강 지류임을 정연하게 밝혔던 이중하는 청이 공사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앞세워 조정을 강하게 압박하는 바람에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토문강 국경 주장을 접은 것이다. 대신 두만강의 최상류 지류인 홍토수(洪土水)에선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고 버텼다.

■ 두만강 상류에는 4개 지류가 있다. 하류 쪽에서부터 서두수 홍단수 석을수 홍토수 순인데 하류쪽의 지류가 국경이 되면 조선의 영토는 그만큼 줄어든다.

이중하는 청측이 타협안으로 제시한 홍단수와 홍토수 사이의 석을수안도 거부했고, 결국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훗날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은 청과의 간도협약을 통해 석을수 국경을 제멋대로 인정해 버렸다. 이것으로 간도는 물론 천지 일대가 청의 영토로 넘어가게 된다.

■ 천지가 일부나마 북한 영토로 넘어온 것은 1962년 북-중 간에 맺어진 국경조약인 '조중 변계조약'을 통해서였다. 김일성과 당시 중국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사이에 열린 이 국경협상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지만 이런저런 일화가 야사처럼 전해진다.

중국이 천지를 내주지 않으려 하자 김일성이 "그러면 천지가 그려진 북한의 국장(國章)을 바꿔야 된다"며 강력히 요구, 천지 일부가 북한령이 됐다는 설도 그 하나다. 어쨌든 이 조약으로 천지의 55% 가량이 북한에 속하게 됐다.

■ 두만강 상류 국경도 이중하가 목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홍토수로 획정돼 석을수를 국경으로 삼았을 경우에 비해 해남군의 넓이에 해당하는 땅이 북한측으로 넘어왔다. 중국 내 소수민족과 주변국들에 우호적이었던 저우언라이의 덕을 본 것이지만 그는 훗날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국토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몰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중국이 백두산의 세계자연문화유산 지정 추진과 함께 대대적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장백산 공정'이라는 또 하나의 공정이다. 백두산을 통째로 어찌해 보겠다는 속셈일 수도 있는데, 북한은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 것인가.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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