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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민간版 '비전 2030'을 고민하자

입력
2006.09.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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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부측 주요 인사들을 만나면 '비전 2030'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에 대해 실망과 허탈감을 쏟아낸다. 민ㆍ관 연구기관과 학계 등의 내로라는 전문가 60여명이 참여해 1년 여에 걸친 작업 끝에 '함께 가는 희망한국'이라는 부제의 야심적 미래전략 보고서를 내놓은 후 잠시 비판의 목소리만 들끓더니 이젠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요 과제로 인해 앞으로 닥쳐올 위기상황을 올바로 인식하고 해법을 마련하자는 보고서의 취지를 살리려면 반대든 찬성이든 공론의 장에서 활발한 토론이 필요한데 "정부가 그저 심심파적으로 해본 소리를 갖고 뭘…" 이라는 반응 일색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런 만큼 극소수 전공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 발표 후 보름이 지난 지금 보고서의 존재를 잊어버렸거나 기껏해야 잠꼬대 같은 소리만 늘어놓은 허접한 '연애편지'로 치부할 뿐이다. 대통령과 고위관료들이 시스템 개혁과 인적 투자를 중시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발전 전략이라고 강조할수록 반응은 더욱 차갑다.

먹고 사는 문제에 무능해 나라 살림과 서민층의 생계를 거덜낸 세력이 무슨 염치로 "호주머니를 좀더 터시면 멋진 신세계를 선물해 드리겠다"고 호객행위까지 하느냐는 것이다.

● 정부 미워 비전 논의도 실종

이 정부가 하는 짓과 얘기면 일그러진 거울처럼 모든 게 뒤틀려 보이는 세상이니 '비전'보고서는 처음부터 꺼내지 않는 것이 좋았을지 모르겠다. 머리로는 당면한 나라의 문제와 타개책을 고민하던 사람들마저 돌연 그런 생각이 싹 가시는 듯한 표정을 지으니 말이다. 더구나 적게는 1,100조원, 많게는 1,600조원의 추가 청구서까지 내놓고 '지금 낼래, 자식들에게 미룰래' 식으로 무책임한 요구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권의 행태에 대한 울화 때문에 보고서에 그려진 우리 사회의 어둡고 구조적인 문제마저 외면하거나 수수방관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정부가 들어서면 그 때 고민하고 따져 보겠다는 태도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정권의 '진심과 성의'를 이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훈장이 지배한 잃어버린 10년'의 적폐를 뜯어고치고 지속 가능한 국가미래를 기약하는 것은 당대의 책무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스위스 같은 삶의 질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필리핀 같은 빈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안으로 저출산ㆍ고령화-저성장-양극화의 고리가 고착화하고 밖으로 글로벌 시장통합과 패권경쟁에 노출된 우리의 처지는 실로 곤궁하다.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이 추락하고, 연금개혁을 둘러싼 세대ㆍ계층 갈등이 표면화하며, 중산ㆍ서민층의 빈곤화가 가속화하는 등 재앙적 시나리오의 조짐도 뚜렷하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오간 데 없고 이를 복원할 재정여력은 극도로 취약해졌다. 과거 한국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온 역동성과 활력은 편가르기나 욕하기에서나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니 정부가 "문제의 원인과 진단, 처방은 다르더라도 정치적 이해와 관계없는 보고서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 달라"고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임기 내내 성장동력, 동반성장, 양극화, 일하는 정부를 입에 달고 지냈지만 문제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돈을 벌 줄도, 쓸 줄도 모른 탓이다. 비전 보고서가 미국 진보그룹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와 일본 정부의 '21세기 비전 2030' 같은 구체적 액션플랜을 결여한 채 정권 입맛에 맞게 각색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미래 설계엔 고통ㆍ비용 필수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공짜점심도 없다. 위기의 구조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고통과 비용의 분담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민간부문이든 공공부문이든, 미래를 위한 설계에서 기득권을 주장하며 열외를 고집하는 것이 허용돼선 안 된다. 최근 분출된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의 모순과 유럽식 복지모델의 한계는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지식층과 전문가그룹이 비판만 능사로 삼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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