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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흡연의 문화사' 그대는 왜 담배를 피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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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흡연의 문화사' 그대는 왜 담배를 피우시나요

입력
2006.09.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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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벗으로… 적으로… 흡연의 역사 한눈에샌더 길먼 등 지음ㆍ이수영 옮김 / 이마고 발행ㆍ3만5,000원

시인 오상순은 ‘꽁초 오상순’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공초(空超)라는 호에서 파생된 애칭만은 아니었다. 실제 일어나서 잘 때까지 담뱃불을 꺼뜨리는 법이 없었다니, 담배에 관한 한 그는 초절의 내공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저런 사람이 산다면 금치산자 취급을 받지 않을까?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1991년의 저서 ‘위조 화폐’에서 말했다. “담배는 상징적인 것을 상징한다.” 흡연이라는 행위 안에는 실로 무수한 의미가 중첩돼 있음을 갈파한 말이다. 담배는 선악이나 호불호의 논리로 일도양단할 수 없다. 예술이었다, 인생이고, 벗인 듯 하다가 교활한 자본이며, 꿋꿋이 살아 있는 환경이다.

하드커버 호화 양장의 이 책은 현재 낭떠러지까지 몰린 담배를 학문적으로 안락사시킨다. 담배는 물론 아편, 대마초, 코카인 등 지난 수 천년 동안 인류가 연기를 통해 흡입해 온 모든 것들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한 욕망과 일일이 대면시키고 그 관행에 파산 선고를 내린다. 시카고 일리노이대 의대 샌더 길먼 교수 등 2명의 저자가 역사ㆍ문학ㆍ미술ㆍ음악ㆍ인류학 등의 학문적 잣대로 집성한 담배학이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1492년 콜럼버스호가 발견한 것은 신대륙뿐만이 아니었다. 불타는 잎사귀가 바로 거기 있었다. 당초 치료 목적이나 호사가적 쾌락을 위해 쓰이던 그것은 머잖아 유럽을, 나아가 세계를 정복했다. 그것, 담배는 원래 만병통치제로 통했다. ‘이 담배가 그렇게도 만능이라는 말인가. 언제든, 어떤 종류든, 모든 사람의 질병을 치료한다니….’ 극렬한 담배 반대자였던 영국의 제임스 1세도 결국 두 손을 들어야 했던 명약이었다.

책은 아프리카, 이란, 인도 등지의 흡연 관행이 일찍이 일궈낸 담배 문화의 풍경까지 각각 한 장으로 서술해 담배의 보편성을 입증한다. 일본을 만나면서 담배는 거액의 관련 용품을 필요로 하는 세련된 취미로 격상했다. 나아가 아편까지 편입하면서 흡연 문화는 아편이 1970년대 차이나타운에서 종말을 맞을 때까지 퇴폐미의 극치를 구현했다. 흡연이 도달한 황홀한 지옥, 아편굴의 생생한 모습들을 보라. 그 정점은 1990년대 후반 미국을 강타한 여송연(cigar) 열풍이다.

결국 담배가 유사 흡연 용품 중 합법의 장막을 얻어내, 영광의 시대를 누렸다. 유독 담배 인심이 후한 한국이 아니더라도, 담배 한 개비를 주고 받는 행위는 성인들끼리 통하는 세계적ㆍ범사회적 관행이다. 탐정 셜록 홈즈, 배우 험프리 보가트 등은 구불구불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속에서 얼마나 멋진가.

담배의 거침 없는 행진을 보여주던 책은 일본담배산업주식회사(JTㆍJapan Tobacco)가 주창하는 예의 바른, 깨끗한 흡연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한다. 성숙한 흡연 문화는 세상을 바꿔갈 첫 걸음이라는 것. 코카인, 모르핀, 크랙, 헤로인 등 마약류와 연관된 흡연 행위에 대한 경고도 책은 잊지 않는다.

예술 작품이나 광고 등 대중매체속의 흡연에 대해 분석하는 대목에 이르러 책의 독창성은 돋보인다. 각종 광고 도판과 영화속 장면 등은 전면 컬러라는 편집 원칙의 덕을 보고 있다.

여러 사회에서 흡연이 어떻게 이해ㆍ평가돼 왔나를 살피는 대목은 혐연권이 거론되는 한국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특히 여성과 담배, 동성애와 담배를 논한 대목은 성에 대한 준거틀이 급선회하고 있는 이 곳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미 고흐가 그렸던‘불붙은 담배를 문 해골’(1885년)에서 보듯, 담배는 오래 전부터 종말을 암시하고 있었다.

과연 담배는 사라질 것인가. 전 세계 흡연 인구의 8할 이상을 개도국이 차지하며, 선진국에서는 흡연자의 대부분이 저소득층이라는 통계적 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책은 그를 위한 대답을, 300여점에 달하는 정교한 도판들 사이 사이에 준비해 두고 있다. 조선 후기의 흥미로운 담배 문화에 대해 안대희 명지대 국문과 교수가 쓴 ‘매화앞에서는 담배를 피지 말지니’를 권말 부록으로 읽는 것은 한국 독자들만의 덤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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