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10일 헬싱키 한중 정상회담에서 “(동북공정 문제를) 잘 다루도록 지시했다”고 밝힌 이후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듯한 몇 가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 지방 정부가 왜곡 내용을 수정하고 학술회의에서 고구려가 중국 지방정권이라는 성격 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그 징후다. 하지만 이는 내달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지는 정지작업 성격이 짙어 최종 평가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고구려 유적 오녀산성을 관할하는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 정부는 지난 7월 현 홈페이지 기술 내용 중 '고구려는 북방 지방정권 관할에 있었던 소수민족’이라는 대목을 삭제했다고 최근 선양(瀋陽)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알려왔다.
총영사관은 “올 6월 랴오닝성측에서 환런현 홈페이지 내용을 수정했다는 사실을 통보해왔지만 수정된 내용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재수정을 요구한 끝에 삭제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환런현은 왜곡된 고구려사를 전시하던 오녀산성 사적진열관도 새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이유로 6월 폐관했다.
또 백두산 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지린성(吉林)성 지린시도 고구려 용담산성 입구의 역사왜곡 간판 6개 중에서 2004년 한중 고구려사 양해사항 합의 이후 세운 4개를 철거했다.
중국 조선족 역사학자는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보는 견해가 설득력이 없다는 견해도 밝혔다. 옌볜(延邊)대학 박찬규 교수는 10, 11일 지린성 옌지(延吉)시 뤄징(羅京)호텔에서 열린 중국 사회과학원 주최 ‘2006 고구려문제 연구토론회’에서 “고구려가 조공을 바쳤기 때문에 중원 정권의 지방정권이라는 관점은 똑같이 조공관계였던 백제, 신라, 왜의 역사는 물론 지방정권이 중국 중앙정권과 빈번하게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구려가 중국 국경 안에서 기원했지만 이후 수도를 남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한반도 역사상 삼국 시기에 가장 강성한 국가이며 한민족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한국이 인식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둥베이(東北)사범대 동아연구중심 쑨진지(孫進己) 연구원도 “민족 기원 문제로 역사 귀속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틀린 방법론”이라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은 내달 한중 정상회담에서 동북공정 문제가 표면화하는 것을 중국이 피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이해돼야 할 것 같다. 일각에서는 학자들이 동북공정 연구결과를 부인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 에 주목한다. 한 소식통은 “중국 역사학계 주류는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데 반대하는 상황”라며 “이런 분위기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동북공정과 관련해 중국측의 속시원한 답변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무리”라며 “장기적인 외교적, 학술적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2월 마무리될 동북공정은 개별 연구과제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종합보고서 작성, 연구성과의 반영 문제 등을 남겨둔 상태이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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