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형사피의자 '대우'는 실로 무지막지했다. 조선시대에 용의자로 지목되면 바로 투옥돼 아무때나 끌려 나와 신문을 받아야 했다. 형벌의 일종인 곤장이 보조수단으로 공공연히 사용됐다.
나중에는 더욱 가혹해져서 거적을 씌운 뒤 온몸을 무차별 구타하고 정강이 사이에 나무를 끼워 비틀었다. 난장과 주리가 그것이다. 그야말로 "토설(吐說)할 때까지 매우 쳐라"식이다. 혹자는 법의학서인 무원록(無寃錄)이나 형사사건 실무집인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을 들어 당시에도 상당한 인권적 배려가 있었던 듯 말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 현직검사가 피의자에게 수사받는 법을 공개적으로 가르쳤다 해서 논란이다. 범죄수사의 프로 검사나 경찰관에게 아마추어인 피의자가 직접 맞닥뜨려 이겨보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인 만큼 피의자는 조사과정에서 아무 말도 말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이 요지다.
난데없는 '이적행위'에 동료 검사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 내부 지휘계통을 무시한 처사라는 질타와 함께 "그러면 도리어 사건해결을 늦출 뿐더러, 자백했을 경우의 정상참작 여지 등을 없애 양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등의 반박이 나오고 있다.
▦ 하지만 조직을 당혹스럽게 하는 언동은 문제삼을 수 있어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엄연히 규정된 진술거부권의 강조는 뭐라 하기 어렵다. 당사자도 "현행법 상 정당한 권리의 행사방법을 설명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므로 짐짓 피의자를 걱정하는 듯한 앞의 반응보다는 "그런 걸 다 가르쳐 주면 도대체 앞으로 수사를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볼멘 소리가 사실은 대부분 검사들의 속내일 것이다. 앞으로 조사, 소환, 체포, 구속, 압수수색의 대처방안 등을 계속 알려 줄 계획이라고 하니 검찰로서야 이런 낭패가 없을 것이다.
▦1980년대 말의 일이지만 50대 기업인이 당시 서소문 대검청사에서 투신한 사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들뻘 수사관에게 이마를 볼펜으로 맞아가며, 자신의 진술이 정해진 방향으로 꿰맞춰져 가는 상황을 보면서 그가 느꼈을 굴욕감과 억울함이 생생했던 때문이다.
최근 검찰에서 조사 받은 사건 관련자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는 것이나 현직 검사가 이런 안내문을 쓴 걸 보면 공포심 등을 이용한 진술 강요나 유도는 여전한 것 같다. 심증과 자백에 우선 의존하는 조선시대식 수사방식의 위엄과 그 '효율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탓일 게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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