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역할은 비판과 다양한 시각을 통해 시민사회에서 진정한 토론이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이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관해 스스로의 관점을 확립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디플로마티크)의 발행인 겸 주필인 이냐시오 라모네(63)씨가 14일 한국판 창간에 맞춰 방한했다. 1954년 창간된 르몽드의 자매지 디플로마티크는 미셸 푸코, 피에르 브르디외, 에릭 홉스봄, 노엄 촘스키 등 석학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계적 권위지로, 56개국에서 22개 언어로 190만부가 발행되고 있다.
68혁명 세대인 라모네씨는 '커뮤니케이션의 횡포'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 등 저서로 유명한 언론학자이자 프랑스 최고의 논객으로, 이 잡지를 15년간 이끌어왔다.
반(反) 세계화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한 라모네씨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주도로 진행되는 세계화의 가공할 파괴력에 대해 역설했다. "세계화란 모든 것을 상품화, 즉 시장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문화 다양성의 파괴로 이어져 결국 미국 문화만 살아남게 됩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유네스코가 체결한 문화다양성보호협약을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협약이 발효하려면 최소 30개국의 비준이 필요한데, 미국이 그 사이를 틈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라모네씨는 이어 한국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조치에 대해 "한국은 여러 정책을 통해 문화산업을 키워왔고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불행한 일"이라며 "영화산업이 타격을 입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방송과 비디오 시장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에서도 세계화와 같은 집중화, 획일화 현상이 나타나 미디어의 수는 증가했지만 비슷한 소리를 합창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판적 미디어의 감소를 우려하면서 "비판과 다양성을 토대로 제4의 권력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모네씨는 전 세계적인 인쇄 미디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디플로마티크가 영향력을 유지하고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비결로 기사의 신뢰성을 꼽았다. "우리는 특정 정당이나 국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미디어가 넘쳐 날수록 독자들은 진지하고 독특하면서도 질 높은 기사로 방향을 제시해주는 매체를 원합니다."
한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엄선한 기사 70%와 한국판 편집인이 기획ㆍ취재한 기사 30%를 싣는다. 매달 15일 발행되며 정기구독과 서점 판매로만 유통된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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