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장항습지는 멸종위기에 놓인 재두루미가 서식하고 고라니와 말똥게가 떼지어 다니는 생태계의 보고(寶庫)입니다. 람사습지(국제보호습지)로 지정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어느 환경운동가의 목소리가 아니다. 14일 수사실에서 만난 검사의 얘기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지청장 정진영) 소속 검사들이 습지보호에 나섰다. 이들은 정의구현, 피의자의 인권만큼이나 환경이 소중하다고 부르짖는다.
고양지청 검사들이 검찰청사 밖으로 눈을 돌린 건 2월 정 지청장이 부임하면서부터다. 정 지청장은 어떻게 하면 검찰과 지역주민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을까 고민했다. 1999년 대검찰청 환경보건과장 시절 야생동물 불법 포획을 처벌하는 데 앞장섰던 정 지청장은 환경문제를 떠올렸다. 고양지청 관내에는 장항습지, 파주시 산남습지, 민통선 지역 등 생태보전지역이 유난히 많다. 반면 신도시는 계속 생기고 도시는 계속 커져 소중한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검사들은 지역 환경전문가들을 초빙해 수 차례 강연을 듣고 소모임도 가지면서 이런 시각에 공감했다.
6월 고양지청에서 발족한 고양환경연구회는 이 같은 노력의 성과물이다. 검사 10명을 포함, 검찰직원 40명이 참여했고 지역주민 36명도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난달에는 고양시 일산구 자유로변에 있는 장항습지로 에코투어(Eco_tourㆍ환경탐사)를 다녀왔다. 김홍우 형사1부장은 “검사실에 갇혀 있을 때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환경오염사범 수사 때 살아 숨쉬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다녀온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자연환경보전법 야생동ㆍ식물보호법 환경정책기본법에 대한 세미나를 갖는 한편, 2개월에 한 번씩 현장탐사를 나간다는 다부진 계획을 품고 있다. 국제습지보호조약인 람사협약의 국내법적 효력을 연구하는 것도 이들의 과제다. 다음 달에는 민통선 지역을 다녀올 예정이다.
이들의 활동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각은 환영 일색이다. 성저초등학교 차혜숙 교장은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기만 하는 줄 알았던 검찰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는데 갈수록 기대를 갖게 한다”며 “많은 학생들과 함께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 장항습지
경기 고양시 자유로 옆 7.6㎞에 걸쳐 펼쳐진 군사보호시설 내 습지. 넓이 2.7㎢로 재두루미 고라니 말똥게 너구리 대륙족제비 등 많은 야생 동물이 살고 있으며 환경부 지정 1급 보호식물인 뚜껑덩굴 문모초 등이 자라고 있다. 환경부는 올 4월 이 지역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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