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어요, 가을이! 알을 낳으러 바다로 나온 장어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어 보기만 해도 영양이 넘칩니다. 장어 생각이 난 김에 임진강으로 향해 봅니다. 예쁘게 개발 된 파주 출판 단지나 해이리를 지나 통일 전망대를 바라보며 쭉 달리면 장어 잘한다는 집들이 나란히 붙어 있지요. 가을바람을 콧등으로 치고 달리며 통일 전망대의 건너편을 넘겨보다 서늘해진 가슴이라면, 그 길의 끝에서 먹는 장어가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분명 맛있을 겁니다.
‘장어’하면 또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고창이지요. 기차를 타고 정읍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고창으로 들어갔던 지난 가을이 생생합니다. 선운사 대웅전에서 마음을 빌고, 한 바퀴 빙 돌아 도솔암으로 올라갔던 산길이 눈에 선합니다. 정결해진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서는, 다시 탐욕스러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풍천장어와 복분자주로 배를 불렸던 기억에는 웃음이 나네요. 아무튼, 가을이 왔습니다. 그리고 2006년의 남은 세월을 꾸려갈 기력은 가을 먹을 거리가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 전어
사실 전어는 사철 먹을 수 있는 생선입니다. 그런데 가을에 먹는 전어는 모두 아시다시피 맛이 다르지요. 뼈째 썰면, 불그죽죽한 지방질이 두껍게 보이면서 아주 풍만합니다. 초고추장에 푹 찍어 먹기에도 아까운 맛으로, 그냥 맛 좋은 간장에만 톡 찍어서 입에 얼른 넣어 버려야 해요. 음~ 쫄깃하게 살 씹히는 맛! 게다가 참치나 연어와 같은 붉은 살생선 뺨치는 지방의 풍미는 입안에 ? 퍼진답니다. 전어의 붉은 지방질은 살짝 씹으면 싱싱한 소의 생간을 씹는 것 같네요. 야들야들, 배릿배릿.
전어는 구이로 먹어도 맛이 있지요. 포크를 꽉 잡아 쥐고 비늘을 긁어 낸 다음, 흐르는 물에 잘 헹궈서 물기를 제거합니다. 요기에 소금을 툭툭 뿌려 석쇠에 끼우고 앞, 뒤로 구우면 되는데, 불의 세기가 중요하니까 주의해야 합니다. 잘 구워진 전어를 머리부터 꼭꼭 씹어 먹으면 바삭하니 맛이 있어요. 따끈한 밥에 찬으로 곁들여도, 소주 한 잔에 안주로 곁들여도 다 어울리니까 한 봉지 사서 반찬으로 안주로 먹으면 온 가족이 다 즐겁겠네요.
맨 김 구운 것에 단초물(식초, 설탕, 소금으로 맛을 낸 물)로 비빈 밥을 펴 얹고, 뼈째 썬 전어를 고추냉이 푼 간장에 찍어서 올린 다음 무순이나 새싹 야채를 넣어 말아 먹으면, 맛이 개운하면서도 배가 부르니 손님 불러 대접해야 할 때 적당하겠습니다.
♡ 버섯
가을 별미로 동양에서는 송이버섯을, 서양에서는 송로버섯을 쳐주지요. 우리나라에서 생물로 보기가 어려운 송로버섯은 호두나 알토란같이 생겼고 새까만 색을 띄고 있습니다. 그 향기가 엄청 강하기 때문에 요걸 통째로는 절대 못 먹고, 대패 밥처럼 얇게 썰어서 맛을 봅니다. 예를 들면 오리 가슴살을 곁들인 샐러드에 종이처럼 얇은 송로 버섯을 얹는다거나, 파스타 한 접시를 먹을 때 치즈 가루처럼 갈아서 뿌려 주거나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손톱만큼만 씹어도 그 느끼한 냄새가 혀에 다 퍼집니다. 때문에 좀 담백하거나 샐러드처럼 퍽퍽하고 까칠한 음식에 잘 어울립니다.
그렇다면 동양의 송이버섯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요란하지 않고, 속으로 꽉 차게 익으면서 나대지 않고 숨어 자라는 그 성품이 고대로 맛이 되어 퍼집니다. 은은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맛. 그러나 송로, 송이버섯처럼 값 비싼 버섯만 제 철이 아닙니다. 표고버섯도 있고, 느타리, 양송이와 같은 대한민국 대표 버섯들이 가을 맛이 든 채로 대기 중입니다. 표고버섯은 들깨 가루와 섞어서 뭉근한 탕으로 해 먹으면 좋겠어요. 특히 하체가 찬분들 드시면 몸에서 열이 좀 나겠네요. 탱탱하게 살이 찬 양송이버섯은 잘 다듬어서 날로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잘 익힌 닭 가슴살을 쪽쪽 찢어서 오리엔탈 드레싱(간장, 설탕, 식초, 참기름을 주로 하는 드레싱)에 무쳐서 양념하고, 아삭거리는 양상추에 채 썬 당근, 채 썬 오이랑 얇게 썬 생 양송이를 더해서 양념한 살코기와 먹으면 저칼로리 단백식으로 좋습니다.
♡ 메밀, 감자
메밀과 감자도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식재료들이지요. 꼬집어 말하면 ‘강원도의 가을’이겠지만. 메밀가루로 묽게 반죽해서 번철에 부치고, 갖은 야채를 채 썰어 그 위에 올려 말아먹으면 프랑스의 크레페가 안 부럽지요. 감자도 역시 가을 기분을 내 주는 맛인데요, 저는 뭐니 뭐니 해도 감자전이 제일 맛납니다. 감자를 갈아서 부쳐내도 맛있지만, 이 맘 때의 찰 진 감자를 두껍게 썰어서 달걀 물 입혀 지지면 감자의 단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어요. 설탕이나 시럽의 단 맛이랑 다른 맛. 잘 익은 가을의 맛 아니겠습니까?
장어, 전어, 버섯, 감자…. 태양열을 가득 물고 있는 가을 식재료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합니다. 맛 좋은 식재료들이 집집마다 상에 올라 많은 분들의 에너지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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