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멀쩡하던 가족이 그야말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평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때를 쓰던 초등학생 아이가 다리를 심하게 떨며 규칙적으로 턱을 움직이기까지 한다.
또 어제까지 정정하던 부모님이 아침에 일어나서는 가족을 못 알아본다. 일종의 급성 장애로 찾아오는 틱(tic)과 자칫 치매로 혼동되기도 하는 섬망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평온한 가정을 하루아침에 ‘공포’로 몰아넣는 이들 질환은 몇 가지 주의점을 숙지하고 원인을 찾아내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치매와 만성장애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치매가 아닙니다-섬망
평소 노익장을 과시해온 김모(72)씨는 뇌혈관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불이 났다”고 소란을 피웠다. 김씨는 현관을 붙잡고 몸을 바르르 떨며 고함을 질러댔고 잠이 깨 뛰어 나온 아들을 보고 “당신은 누구요” 라며 황당한 행동을 계속 보였다. 치매가 온 것일까.
사실 김씨가 보인 증상은 섬망이라 불리는 일종의 정신장애다. 섬망은 증세가 치매와 비슷하고 특히 노인들에게 잘 나타나는 병이라 가족들이 불안에 떨기 쉽다.
섬망은 입원치료를 받은 70세 이상 노인환자의 10명 중 3명에게 나타날 정도로 흔한 질환으로 급성 외인성 반응증세가 나타난다.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나타나며, 기억력 감퇴 등 사전 증상이 천천히 다가오는 치매와는 완전히 다르다. 김씨와 같이 고령에 대수술을 받으면 신체리듬이 깨지고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의식장애와 혼동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섬망이라 부른다.
섬망은 우선 집중력과 지각력에 장애가 오고 곧바로 기억장애, 착각, 환각, 해석착오, 불면증, 악몽, 가위눌림 현상이 이어진다. 또 사람들과 얘기할 때 안절부절 못하거나 과잉행동을 보인 후 갑자기 입을 다물기도 한다.
이러한 섬망은 수술과 같은 급작스러운 외부로부터의 충격 외에도 ▦전신이 병균에 감염됐을 때 ▦뇌에 산소공급이 잘 안될 때
▦혈액내 당분이 부족할 때 ▦뇌세포의 각종 대사 과정에 관여하는 필수 비타민인 티아민이 부족한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등 원인이 다양하다. 약물에 중독됐거나 금단현상이 나타날 때 생기는 순간적인 정신착란도 섬망의 일종이다.
서울시 북부노인병원 신영민 정신과 과장은 “섬망은 유발요인을 찾아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1~2주내에 완치가 가능하다” 며 “그러나 치료시기를 놓쳐 치매가 동반된 경우나 뇌의 기질적 이상을 동반한 경우의 섬망은 오랜 기간 지속되며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섬망의 치료는 일상생활의 리듬을 다시 회복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증상이 섬망으로 판단되면 일단 유발요인 제거를 위한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아야 하며 일상생활의 주기와 특히 수면주기를 조절해주는 게 좋다. 병실에 있을 경우 집에서 쓰던 낯익은 물건들을 가져다 놓으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혼내지 않고 TV멀리해야-틱
공공장소, 특히 지하철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틱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다. 틱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하는데 전체 아동 10명 중 1, 2명에게 나타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틱은 유전적 요인이나 외부의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대뇌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틱 증상을 보이는 아동들은 대부분 뇌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 노어아드레날의 대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대뇌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운동과 사고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분의 기능이 약해지고, 결국 대뇌에서 나오는 정보의 교정과정이 문제가 돼 음성을 내거나 행동을 하는 게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장애가 나타난다.
틱은 주로 뇌에 장애가 생긴 아동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강압적인 상태에 놓일 때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틱은 신체의 일부를 경련하듯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운동틱’과 무의식적으로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내는 ‘음성틱’으로 나뉜다. 두 가지 틱을 동시에 보이는 것은 뚜렛(Tourette)증후군으로 따로 분류된다.
틱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부모의 관심이 중요하다. 우선 틱이 아이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오는 증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절대 아이를 혼내거나 다그쳐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심리적 스트레스가 더 많아져 증세가 장기화하고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틱 장애를 가진 아이가 혼자 TV나 컴퓨터 등에 몰입하면 증상이 더욱 나빠진다. TV 등은 짧은 시간에 보다 압축적이고 다량의 정보를 여과 없이 쏟아내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보다 판단력과 주의력이 떨어지는 틱장애 아동의 뇌는 점차 화면이 보여주는 정보의 흐름을 놓치게 되고 결국 彭@岵?화면의 느낌만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행동을 인식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증상이 더욱 심화된다.
변기원 변한의원 원장은 “틱이 1년 이상 지속되거나 하루 10회 이상의 증상을 보이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움ㆍ서울북부노인병원 대전선병원 변한의원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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