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스무살, 이름은 권정숙(가명) 입니다. 고향은 함경북도구요. 특기는 노래 부르기예요. 자기소개 할 때 이렇게 말하니까 '뚝' 떨어지더라구요."
최근 동대문시장 의류상가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는 권씨는 자신의 낙방 경험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서울 말씨'로 "아무리 힘들어도 북한에서 버린 꿈을 마음껏 펼쳐 보고 싶다"며 힘주어 말했다.
11~13일 경기 광주시 한국노동교육원에서는 '특별한' 학생 17명이 모였다. 특별하다고 하지만 겉 모습은 영락없는 또래 청소년ㆍ청년들과 다름없다. 이들은 최신 휴대폰으로 힙합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길게는 3년, 짧게는 3개월 전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북한이탈주민) 들이다.
새터민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에 다니고 있는 이들은 노동부 주관 '2006 성공하는 취업캠프'에 참가, 사흘간 합숙했다. 새터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캠프가 열린 건 처음이며, 학생 대부분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명문대에 수시 합격한 예비 대학생도 3명이나 생겼다.
이들의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먹고 사는 문제다. 13일 열린 '미래 모습 인터뷰하기' 시간도 직업 선택이 최대 화두였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꿈에 대해 설명했다.
예비대학생 김진섭(23ㆍ가명)씨는 "중국어 실력을 살려 중국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진(23ㆍ가명)씨는 "북한에선 축구 선수였는데 생각해 보니 계속 하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 버렸다"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유치원 교사, 헤어 디자이너, 선교사, 프로게이머, 영화 감독 등 학생들은 자신의 장래 직업을 당당하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어 열린 '명함 만들기' 시간에도 이들은 독특한 디자인과 문구로 자신을 알렸다. 나무를 끔찍이 사랑한다는 안호기(18ㆍ가명)군은 '항상 뿌리가 되겠습니다'라는 문구와 그림으로 조경연구원이 되겠다는 자신의 희망을 표현했다.
태한성 셋넷학교 교사는 "새터민 학생들은 대중매체 등의 영향으로 유행에 대한 습득능력은 빠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취업 정보는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아 불이익을 받기 쉽다"고 아쉬워했다.
실제 이들은 열정과 의지가 남다르지만 '성공 방법'에 대해서는 까막눈 수준이다. 북한은 일반적으로 학력수준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데다 취업과 자격증 취득 정보와 관련 노하우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흘 동안 자기소개서 작성법과 면접 연습 등을 열심히 배웠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 대한민국에서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던 사람들답게 이들의 눈빛은 "이제는 한국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박종선 노동부 서울남부지청장은 "새터민 청소년들은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로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업 취약 계층"이라며 "직장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해 진로지도 등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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