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월 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미국의 대북제재 움직임도 구체화하는 등 매우 민감한 시기에 두 정상이 만나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자유무역협정(FTA)협상 등도 양국이 분명한 시각차를 보이는 북핵 문제 이상으로 예민한 사안이다. 이들 현안을 놓고 극심한 국론분열에 직면한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해법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
북핵 문제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핵 문제다. 양국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큰 틀에는 원칙적으로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이를 달성하는 방법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한을 어떻게 6자회담에 복귀시켜 회담을 재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번 회담의 중요 포인트”라고 말했다.
1년이나 중단된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필요성엔 양국이 공감하지만 방식을 놓고서는 북미는 물론 한미간에도 인식차가 크다. 북한은 금융제재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내건 반면, 미국은 북한이 먼저 6자회담에 참여할 것을 요구해 계속 평행선이다. 북미 양측을 조정해야 하는 우리로선 더없이 난감하다. 정부고위관계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얘기만 나온다”고 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해법 없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쉽지않다.
우리 정부는 절박하지만 상황은 어렵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미국은 우리측 노력으로 상당히 신축적으로 나왔다”며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면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계좌동결 문제를 비롯, 모든 현안에 대해 협의하겠다고 하는데 북한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평화적 해결’, ‘6자회담 조기 재개’, ‘9ㆍ19 공동성명 이행’이란 3원칙을 확인하겠지만,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선언적 의미에 그치리란 고백이다.
정상회담과 달리 실무협의에선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한 세부방안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6자회담의 틀을 강조하는 반면 미국은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염두에 두고 북핵 다자회동 방안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대북제재
정부 고위관계자는 12일 “한미정상이 대북제재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가 유엔안보리의 대북결의안을 잘 이행해 온 만큼 정상회담의 의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듯 부시 미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대북제재 참여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거나, 역으로 노 대통령이 미측에 대북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식의 ‘마이 웨이’ 대화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정상회담의 경우 네거티브한 대화가 오가기보다는 포지티브한 대화를 하는 게 관례인 만큼 상대측 입장을 이해하면서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북핵 해법의 기본원칙을 확인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이 노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대북제재 행렬에 우리 정부를 적극 끌어들이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 당국자들의 말대로 정상회담에선 외교적 수사가 강조되면서 ‘유엔안보리 대북결의안을 철저히 이행한다’는 원칙적 언급에 그칠 지 모른다. 하지만 실무 협상에서는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대북제재 문제가 미국 주도로 강하게 제기될 전망이다.
당장 12일 노 대통령을 접견하는 헨리 폴슨 재무장관만 해도 “대북금융제재가 주의제가 아니다”는 우리측 설명이 있긴 했지만 어떤 식이든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계좌 동결조치의 당위성을 강조할 것이다.
더 큰 어려움은 부시 정부가 우리 정부의 대북접근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않는데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우리가 유엔안보리 결의안 이행에 앞장서왔음에도 소극적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유엔안보리 대북결의안의 변함없는 이행을 새삼 언급키로 한 것도 이를 의식해서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양국 모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가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지않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미국도 한국도 전작권 환수에 대한 원칙에 동의하고 있고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점에 대해선 미측도 별 차이가 없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정상회담에서 전작권은 한국군의 능력에 대한 양국의 신뢰를 배경으로 하며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유사시 증원 등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공약을 재확인하는 언급이 오갈 것”이라며 한국 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가시적 언급이 나올 가능성에 주목했다.
핵심 쟁점인 환수권 시기의 경우 정상회담이 아니라 오는 10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전작권 환수를 놓고 양국 정상이 시기를 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작권 환수의 경우 두 정상간 조율이 필요한 정치적 사안이라기보다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평가해 이뤄지는 군사적 성격이란 분석이다. 때문에 정상회담에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도로 언급하고 시기 등 세부사안은 한미군사협의체인 SCM에 넘긴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에 앞서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미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사전접촉에서도 이 문제가 가볍게 다뤄진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또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는 “전작권 문제는 한미간의 이슈라기보다는 한국 내 정치상황 등에서 벌어진 정치적 이슈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정상회담 등에서 핵심의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며 “전작권 문제를 한미동맹 균열 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한미FTA협상
한미FTA 협상은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체결의지에도 불구하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시애틀에서 열린 3차 협상도 별다른 진전 없이 끝났다. 내년 6월 말로 종료되는 미행정부의 신속협상권한(TPA)를 감안하면 내년 3월까지는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
양국 정상이 이번에 한미FTA체결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고, 협상을 독려하는 언급을 하는 방식으로 협상의 전기를 마련할 지 주목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양국 정상이 FTA가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일치된 견해를 밝히게 될 것"이라며 "양국 정상이 '이견은 협상을 통해 원만히 해결해나간다'는 원칙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협상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정부관계자는 "FTA협상은 현재 교착 상태라 양국 정상이 협상에 힘을 실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차원에서 격려수준의 대화가 진행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다른 의제와 달리 한미FTA만큼은 정상회담에 이어 열리는 오찬에서 논의키로 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특히 국내의 강한 반대여론을 의식, 쌀을 포함한 우리의 농산물 중 민감 품목에 대한 미국의 이해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한국산으로 인정해주는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요청할 수도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은 한미FTA 체결을 위한 미국의 대승적 양보를 호소하는 언급만 하고 실무 협상팀이 이를 거론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외교부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이 워싱턴에서 노 대통령을 수행, 조언하고 있다.
워싱턴=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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