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과학원이 동북공정 18개 연구과제를 웹사이트에 올린 뒤 중국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일 헬싱키 회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시정을 약속했지만 양국은 여전히 동북공정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서경대 교수)과 국회 독도수호 및 역사왜곡 대책특위 위원인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의 대담을 통해 동북공정 등 중국 역사 왜곡의 배경을 분석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 등을 모색해봤다.
서길수=동북공정은 2002년 시작해 내년 2월에 끝나는 한시적인 프로젝트다. 우리는 동북공정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중국의 역사 침탈 전반을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 우리 역사 전체를 자기 역사라 우기기 때문에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침탈이라고 봐야 한다.
유기홍=중국은 소련의 붕괴 과정을 지켜보면서, 소수 민족 정책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국가의 강고한 틀을 유지하려면 소수 민족의 단결이 필요한데, 거기에 역사 재구성이 동원됐다.
특히 조선족은 중국 내 소수 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잘 사는 모국을 가진 민족이다. 남북한이 통일돼 국력이 강해지거나 북한이 붕괴하면 조선족이 크게 동요할 가능성이 높은데, 동북공정은 이를 사전에 막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수동적, 방어적이 아니라 신중화주의적, 팽창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서=중국 내 55개 소수 민족은 인구로는 8.41%에 불과하지만 티베트 신장, 동북 지역 등 넓은 지역이 많기 때문에 면적으로는 60%나 된다. 옛날에는 불모의 땅이었으나 지금은 정치적으로나 영토적으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유=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이 출간한 '동북사지'는 백두산의 기원을 중국 연(燕)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린성은 또 창바이산(長白山ㆍ백두산의 중국식 이름) 보호개발관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백두산 공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자칫 백두산이 아니라 창바이산이 국제적인 공식 명칭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애국가의 가사가 '동해물과 창바이산이…'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헤이룽장(黑龍江)성은 '당 발해국 상경용천부 유지 보호조례'를 만들고 발해문화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핵 문제 등으로 헤매고 있는 사이에 중국이 이렇게 공세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팽창주의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서=동북공정의 배경에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은 자기네가 세상의 중심이고 주변에는 오랑캐가 있다는 중화주의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주변 오랑캐는 언제든지 중국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이론인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 등장했다.
이 이론은 옛 청나라 국경 안에 있던 민족을 모두 중국 민족으로 보고 그 역사도 중국의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여기는 것도 이 이론이 바탕이 됐다. 현재 중국은 공무원 등이 옛 청나라 지역을 여행하면 경비의 절반을 대준다고 한다. 그만큼 집착이 강하다.
유=중국 지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 주변에는 원래 민가가 많았다. 그러나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민가 500~600채가 집단 이주됐다. 중국은 그만큼 국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교과서 왜곡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중국에서 만들어 신라에 전했다고 할 정도다. 우리 정부와 중국이 2004년 고구려사를 정치문제화하지 말고 민간 차원의 학술 토론으로 풀어가자는 취지의 5개 항에 구두 합의를 했지만 우리만 그 약속을 지키고 중국은 교묘히 어긴 것이다.
서=학문적으로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뒤 하나의 이론 혹은 학설로 인정하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엄정한 학문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역사 유물 표지판 등에도 곧바로 그렇게 적는다.
유=학계는 이미 2003년부터 중국의 동북공정 움직임을 간파하고 이를 경계했으나 정부는 1년이 지난 뒤에야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접근하자며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시켰다. 물론 그때라도 재단을 만든 것은 잘 한 일이다.
서=중국의 역사 침탈과 관련해 우리가 갖고 있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중국이 아무리 우겨도 결국 고구려사는 중국사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우리가 중국에 항의하고 대응해 봐야 무슨 성과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자는 중국의 연구를, 후자는 우리의 연구를 얕보는 것이어서 둘 다 문제가 있다.
유=고구려연구재단이 2004년에 '고구려사 읽기 자료'를 만들어 초ㆍ중ㆍ고교에 배포하려 했으나 외교통상부의 반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외교부는 중국과의 갈등을 우려한 것인데, 그런 식으로 한 결과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서=이번에 좀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동북공정과 관련, 문제는 중국이 일으켰는데 비판은 정권을 향했던 것이다. 정부가 친미냐 친중이냐를 따지기도 했다. 고구려연구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놓고 편가르기를 부추기기도 했다. 이를 조장한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연구기관이냐, 정책기관이냐 혹은 중국과 일본에 대한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느냐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역사 침탈에 대해 외교부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는 안 된다. 외교부는 중국이 우리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인데다 특히 6자 회담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서인지 너무 조심스럽게 대응했다. 우리도 이제 당당해야 한다.
유=그 동안 너무 냄비식 반응을 보였다. 중국의 역사 왜곡이 있을 때 한번 반짝 끓다가 잠잠해졌다. 어쨌든 동북아재단이 조만간 발족하는 만큼 연구와 정책 입안이 지속적으로,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7차 교육과정이 채택된 이후 역사 교육이 너무 등한시된 점도 지적하고 싶다. 한국사와 세계사 모두 선택 과목이다. 중국사를 공부하지 않고도 대학 가는 학생이 너무 많다. 공무원 시험에도 한국사 과목이 빠져있다. 반면 중국은 표지판 하나하나까지 왜곡해가면서 자기네 국민을 교육시키고 있다.
서=우리나라 사람은 드라마에서 역사를 배운다는 냉소적인 이야기가 있다. 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동북공정 같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쩌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역사 교육일 지 모른다. 중국의 역사 침탈은 매우 심각하다.
단군조선에서 시작해서 간도 영유권에 이르는 모든 문제가 포함돼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들이다. 국회도 고구려 특위를 만들어놓고 별로 한 일이 없었다. 국회는 정부보다 입장이 자유로운 만큼, 역사 의식을 갖고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14개국과 연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유=중요한 지적이다. 작년에 국회가 '아시아평화의원연대회의'라는 것을 만들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전후처리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의원들이 만든 것이다. 중국의 역사 침탈에 대해서도 공동 대응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동안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남북관계가 현재 어렵게 전개되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남북 공동 대응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아 안심이 된다. 정부도 국민의 뜻을 잘 알고 국민의 힘을 어떻게 모을 지를 고민해야 한다.
서=중국은 고구려를 전공한 박사가 2명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30명이 넘는다. 우리의 연구 수준은 매우 높다. 우리는 이미 중국의 이론과 연구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에 빈틈이 매우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인은 고구려를 자기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반면 우리는 우리 역사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소설 드라마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에서 고구려 발해 등을 다루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역사에 대한 국민의 기본 의식이 탄탄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유=동북공정이나,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및 자위대의 정규군화 움직임 등은 구 소련 붕괴와 냉전 체제 해체 이후 중국과 일본이 동북아 패권을 노리기 위한 역사 전쟁의 성격이 강하다.
우리가 동북공정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은 이 문제가 결국 동북아의 평화와 직결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중국의 옛 역사서는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동북공정은 중국이 자기 조상이 기록한 역사를 뒤집는, 심각한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리=박광희기자 khpark@hk.co.kr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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