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보수당수가 9ㆍ11 5주년에 즈음하여 ‘테러와의 전쟁’ 등 부시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대놓고 비판했다. 원래 집권 노동당보다 친미 성향인 보수당의 지도자가 9ㆍ11 추모일에 혈맹을 비판한 것부터 놀랄 일이다.
더욱이 캐머런은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에 오랫동안 내준 정권을 되찾으려는 보수세력의 기대를 드높인 인물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비현실적 흑백논리와 단순한 세계관을 토대로 군사력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전제, ‘겸손과 인내’가 긴요하다고 촉구했다.
■ 물론 캐머런은 자신과 보수당은 미국의 본능적 친구, 동맹의 열정적 지지자라고 강조했다. 또 반미주의는 지적ㆍ도덕적 과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 날도 “테러와의 전쟁은 문명과 이념을 위한 투쟁”이라고 역설한 것을 비웃듯이 “문명의 충돌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인도주의적 대외개입은 확고하게 지지하되, 그저 노예처럼 추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블레어 총리가 ‘부시의 푸들’이라고 조롱 받은 것과는 다른 면모를 과시하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 그러나 캐머런의 발언은 단순히 블레어 정부의 미국 추종을 비난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는 이 날 ‘영ㆍ미 프로젝트’란 이름의 모임에서 연설하기에 앞서 몇 달 동안 보수당의 새 외교정책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라크 침공 등 미국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의 난맥상이 새삼 부각된 9ㆍ11 기념일에 영국의 새로운 외교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언론은 무엇보다 캐머런이 자신은 신보수주의자(a neoconservative)가 아니라 자유보수주의자(a liberal conservative)라고 선언한 것이 참신하다고 논평했다.
■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이념 또는 이를 주도하는 세력인 네오콘(Neocon)과 유럽의 전통 보수이념ㆍ세력인 리브콘(Libcon)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살필 계제는 아니다. 다만 캐머런과 보수당의 파격 행보는 레이건 시대에 이어 국제관계를 지배한 네오콘의 퇴조를 상징한다는 풀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캐머런은 변화의 흐름에 맞춰 간명하고 신선한 외교 비전을 제시한 점이 돋보인다고 진보 언론이 평가한 것도 특기할 만 하다.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함께 되돌아 볼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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