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니 우리가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면 안 될까?” 2000년 11월 당선자 발표를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엎치락뒤치락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던 한 선배가 무심코 던진 말이다. 어차피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라 그저 웃음으로 넘겼던 기억이 난다.
15일 개봉하는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을 보고 정말 그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도입부에서 “미국의 차기 대통령감이었다”는 우스개로 자신을 소개한 앨 고어의 열정과 인간적인 면모가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은 온실효과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 지 일목요연하게 지적하고 있다. 온실효과가 지닌 폭발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진실은 새삼 섬뜩했다. 다큐멘터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느 상업영화와 마찬가지로 내용은 흥미로웠다. 고어가 테러와의 전쟁보다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온실효과의 문제점을 사진과 도표를 적절히 활용해 아주 쉽게 설명해서다. 그는 그저 환경에 관심 있는 정치인이 아니라 어느 학자 못지않은 환경문제 전문가였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부통령까지 지낸 그가 내부고발자로서 “미국은 온난화의 주범”이라며 자신의 조국을 서슴지 않고 비난한다는 점이다. 그는 인류애와 애국심이라는 이율배반적 입장 중 굳이 하나를 선택하지않고 둘을 결합해 환경문제를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려 한다. ‘만약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이라는 부질없는 가정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더불어 ‘우리는 용기 있고 전문성과 철학을 겸비한 정치인이 왜 없는 걸까’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고어는 “정치인들은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사안을 도외시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권자가 불편하게 느낄지라도 정치인은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만일 그런 정치인이 없다면 당신이 출마해 뜻을 펼쳐라”고 까지 주장한다. 시류에 편승하고 권모술수에 의존해 지도자 자리를 노리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불편한 진실’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화일 것이다.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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