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헉, 우리 개그는 말여, 헉, 헉, 개그가 없어.” 그렇다. 출연자 정종철의 말대로, KBS2 ‘개그콘서트’의 ‘골목대장 마빡이’(사진)엔 개그가 없다. 네 명의 출연자가 시작부터 끝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마를 때려대기 때문만은 아니다. ‘골목대장 마빡이’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지켜왔던 개그의 룰을 깬다.
개그맨들은 코너를 진행하는 동안은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한 채 모든 상황에 대해 진지한 척 한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언행일치’ 출연자들이 아무리 말과 행동이 엇나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해도, MBC ‘개그夜’의 ‘명품남녀’가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컵라면에 공기밥’을 주문해도 그들은 진지하다.
하지만 ‘골목대장 마빡이’는 거기서 웃음을 끌어낸다. 그들은 이 코너가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과 단순 동작이 반복되는 이 코너가 금세 식상해질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다. 그들은 관객이 자지러지게 웃는 것을 보며 오히려 힘드니까 빨리 끝내고 들어가자고 난리고, 개그가 식상해질 거라는 사람들에게는 “이 개그는 이게 다여”라며 그 사실을 인정해버린다.
김시덕의 말대로 ‘죽이는 아이디어’를 짜기 위해 스스로를 ‘죽일 듯이’ 혹사시키는 개그맨의 현실 자체가 소재가 되는 개그. 그래서 ‘골목대장 마빡이’는 점점 더 ‘강한 것’을 요구하는 관객들의 기준에 도전하게 된다. 첫 주에는 등장 자체만으로 웃겼지만 2주째에는 “식상하다”는 말이 나오고, 3주째에는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관객들의 웃음이 커질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비애를 더욱 ‘새롭고 강한’ 방법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첫 주에는 이마만 때려도 됐던 것이 그 다음에는 더 어려운 동작이 추가되고, 고통에 헐떡이는 모습을 더욱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관객의 웃음은 그들의 슬픔과 맞닿아 있다.
‘골목대장 마빡이’는 ‘개그에 대한 개그’다. 거기엔 웃기기 위해 자신들의 애환까지 고백해야 하는 개그맨의 현실이 담겨 있다. 지상파 3사의 개그 프로그램 인기가 높아질수록 개그맨들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한 번 인기가 식은 개그맨들은 좀처럼 과거의 위치를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골목대장 마빡이’는 한 번 그 ‘끝’을 보고 싶은 코너다. 어쩌면 그 끝에는 웃음 대신 진한 눈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개그맨은 웃겨야 한다. 설사 개그가 없다고 해도.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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