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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동북공정이 대수인가

입력
2006.09.1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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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인기다. MBC와 SBS가 각각 드라마 '주몽'과 '연개소문'을 방영하고 있고, KBS가 주말부터 내보낼 '대조영'도 고구려 말기를 시대배경으로 삼아 시작된다. 오래지 않아 광개토대왕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태왕사신기'도 방영될 예정이다.

고구려 열기는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다. 경기 구리시는 4,000억원을 들여 아차산 기슭에 고구려 테마파크를 조성하기로 했다. 고구려 성곽과 보루, 고분벽화를 복원하고, 역사박물관과 광개토대왕 광장, 장수왕 광장, 광개토대왕비, 안학궁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 애초에 예산낭비 우려로 보류된 계획이 더 큰 규모로 살아났다. 고구려와 인연이 있는 다른 지자체에도 파급될 움직임이다.

● 실패가 예정된 동북공정

현재의 고구려 열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이 출발점이다. 또 최근 장기 불황으로 국민적 자신감이 위축된 결과 과거의 영광에서 심리적 보상을 찾으려는 집단 무의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반도 북부와 대륙의 드넓은 지역에 강성대국을 세우고, 중국과 직접 동북아의 패권을 다투었던 고구려의 역사야말로 '민족혼'이나 '민족기상'을 일깨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이 빼앗으려고 한다니 국민적 애착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애착과 열기의 출발점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국내의 반응에 의문을 감출 수 없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사회주의 이후의 국가ㆍ국민통합의 새로운 기반으로 '중화민족'이라는 인식을 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른바 '중화민족'은 민족문제가 장차 국가통합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근본적 모순을 안고 있다. 혈연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민족을 통치지역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면 문화혁명 못지않은 억지가 따른다. 그래서 혈연의식보다는 고리가 약한 역사의식을 노렸다.

현재로서 '중화민족'의 앞날은 험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근대적 국민건설에 실패한 중국이 뒤늦게 이를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 과거 량치차오(梁啓超)의 '황족'(黃族)이나 쑨원(孫文)의 '5족 공화에 의한 대한족' 등은 한결같이 한족 중심의 동화를 염두에 두었다.

그것이 공산화 이후 페이샤오퉁(費孝通)에 의해 민족집단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다원일체 중화민족'으로 바뀌었다. 그것을 전면 수정한 현재의 '중화민족'은 과거의 동화주의로 돌아가는 데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자기 중심적 역사 서술이 기분 나쁠 수야 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우리 역사를 빼앗긴다는 것일까. 흔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또는 '현재의 거울에 비친 과거'라고 말한다. 그것이 거울이건 인식의 틀이건 현재에 발을 딛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행위에 의해 비로소 이뤄진다.

따라서 역사는 과거를 보려는, 또는 기억하려는 주관적 의지의 결과물이다. 한국사에서 역사를 빼앗길 지경에 이르렀던 유일한 시기인 일제 식민통치 시절에 집요한 일제의 역사 윤색 기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역사를 빼앗기지 않았던 것도 기억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족보가 아니라 후손의 기억을 돕기 위해 족보에 기록된 내용이다. 족보를 빼앗긴다고 혈통을 빼앗기는 것도 아닐진대 그 내용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 대응도 허상에 사로잡혀

그런데도 중국이 역사를 빼앗고, '민족혼'을 빼앗는다고 온 나라가 소란하다. 처음에 '민족혼'을 위협한다더니, 이제는 '영토 야욕'을 성토한다. 반발의 방향도 혼란스럽다. 중국이 고구려 유적을 홀대해도 난리고, 치장해도 시끄럽다. 언제는 북한이 국경획정 협상에서 득을 봤다더니, 이제는 중국이 성산(聖山)인 백두산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법석이다.

그런 와중에 얄궂은 민족주의만 기승을 부린다. 중국의 역사 왜곡을 국수주의적 시각이라고 비난하면서 그 근거로 한국 민족주의를 내세운다. 단언하건대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수 없다.

역사 서술의 잣대로 지역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민족 중심의 역사 서술을 내세워 봐야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허깨비를 좇고 있는 중국의 몸짓에 덩달아 춤을 추는 격이다. 그런 허망한 몸짓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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