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모험을 즐긴다. 타협의 대상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다. 그리고 끝없는 실패의 반복은 작지만 소중한 성공을 낳는다.
‘풍운아’ 최향남(35ㆍ클리블랜드 산하 트리플A 버팔로 바이슨스)만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난 2월22일 건너간 야구 본고장 미국에서 돌아온 최향남을 10일 만났다. 짧게 치켜 올린 머리와 간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오히려’ 정갈해진 그의 모습에서 땀과 눈물의 마이너리그 생활, 그리고 꿈을 좇는 방랑자의 멋과 풍류가 묻어났다.
# 주위 만류 뿌리치고 떠난 미국, 에이전트도 통역도 없었지만… 36세 동양인에 "굿 럭!" 희망
사막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에이전트도 없었고 통역도 없었다. 흔한 휴대전화 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다. 트리플A로 배정받은 첫 날, 최향남은 쌀쌀한 초겨울 날씨의 버팔로 숙소 호텔에서 창 밖을 내려다보던 순간을 돌이키며 “사막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마이너리그 캠프 동안 기량을 점검받은 뒤 마지막 날 ‘자대 배치’를 받 듯 싱글A, 더블A, 트리플A로 나뉘더라고요. 결과에 따라 울고 웃고, 이런 게 생존 경쟁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최향남은 마이너리그 연습경기 4경기에 출전했는데 4경기에서 모두 홈런을 맞았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소속팀이 결정되던 캠프 최종일 자신을 부르던 코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초이, 트리플A, 굿 럭!”
36세의 한 동양인 투수의 ‘의외’의 호투에 구단의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최향남이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될 무렵인 5월 초. “어느 날 구단에서 갑자기 통역을 붙여주고, 전화기를 주더라고요. 또 트레이너(매니저)는 여권을 준비하라고 하길래 왜 그런가 물었더니 ‘언제 (빅리그행) 비행기를 탈지 모르니까’ 라는 거에요.”
낯선 삶 즐기는 보헤미안
1990년 목포 영흥고를 졸업하고 해태(현 KIA)에 입단한 최향남에게는 ‘불펜의 선동열’이라는 찬사와 조롱이 따라붙었다. 강속구에도 불구하고 마운드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였기 때문이다. 21세가 되던 이듬해 최향남은 군 입대를 했다. 경기도 연천의 모 부대에서 포병으로 28개월간 꼬박 근무했다. 프로야구 선수가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풍운아 인생의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최향남은 LG 에이스로 활약하던 1998년 가운데 머리만 샛노랗게 물들인 일명 ‘아파치 머리’를 하고 나타나 야구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만 해도 대단한 파격이었다. 어깨 부상에 시달리던 2002년에는 엉뚱하게도 골퍼 전향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 때도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부상 회복도 더디고, 또 야구선수가 골프를 하면 금방 는다는 말을 들어 구체적으로 준비까지 했었어요. 결국 포기했지만.”
최향남은 2003시즌 후 LG에서 방출당했다. 그러나 사실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이었다. “그 때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해외 구단에 테스트를 받기 위해 LG 구단에 찾아가 방출시켜달라고 요청을 했죠.”
그러나 그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최향남은 시험도 받기 전에 “방출 이력이 있는 선수는 안 봐도 뻔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짐을 싸야 했다.
도전을 통해 배운 건 인내와 용기
포기할 최향남이 아니었다. 2004년 2월 대만으로 유턴한 최향남은 라뉴 베어스에서 다시 테스트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연락을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 그런데 KIA 유니폼을 입자마자 황당한 소식이 들려 왔다. “KIA와 계약하고 나니까 라뉴 베어스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올 수 있느냐고 하길래 못 간다고 했죠 뭐.”
최향남은 전반기 마지막 날 클리블랜드 산하 마이너리그 총괄 디렉터인 존 패럴이 지켜 본 경기를 기억한다. 5이닝 무실점. 그러나 불러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7월초 팀 동료 구티에레스가 빅리그에서 트리플 A로 내려오는 바람에 최향남은 부상자명단에 오르는 희생양이 됐다. “감독이 절 부상자명단에 올리면서 질문할 게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죠.”
결국 빅리그 입성은 좌절됐지만 최향남은 트리플A에서 ‘특급’ 성적표를 받았다. 모두가 비웃었고, 모두가 만류했던 일을 크게 ‘저지르고’ 말았다. 이제 최향남은 또 다른 꿈을 찾아 떠날 생각이다. “저에게는 메이저리그가 남았고, 먼 훗날에는 또 어떤 ‘도전 과제’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죠.”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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