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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악비와 오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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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악비와 오삼계

입력
2006.09.1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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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의 역사 왜곡 보도를 접하면서 악비와 오삼계라는 인물이 새삼 떠오른다. 악비(岳飛ㆍ1103~1141)는 송나라 때 금나라와 싸운 구국의 영웅이자 만고의 충신이다. 항저우에 있는 악비묘와 충렬사에는 지금도 중국인들의 참배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사당 안의 좌상은 높이가 4.5m나 되고 화려한 보라색 비단옷으로 장식돼 있다.

그런데 이 악비가 몇 년 전부터 중국 당국에 의해 '그냥 훌륭한 장군'으로 격하되고 있다. "송도 금도 다 중국의 일부인데, 형제끼리 싸운 것을 가지고 민족과 구국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금은 여진족의 나라다. 그 후예가 만주족으로, 후일 송과 마찬가지로 한족의 나라였던 명을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운다. 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오삼계(吳三桂ㆍ1612~1678)였다. 그는 요동 방어를 팽개치고 청군의 베이징 진격에 앞장서고 그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래서 만고의 역적이고 중국사 10대 간신에 낄 정도다. 그러나 현재 중국 영토 내의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논리로 하면 오삼계는 현대 중국을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한 셈이다.

■ 만주(현재의 동북3성)에서 출발한 청은 수많은 정복전쟁을 통해 한족의 중원, 내몽골, 티베트, 위구르, 타이완을 차례로 복속시켰다. 현재의 중국은 바로 청의 영토를 그대로 차지한 것이다. 그러니 현대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쑨원은 쑥스럽게 됐다.

20세기 초 혁명운동을 하면서 국민당 강령, 그것도 제 1조로 멸만흥한(滅滿興漢ㆍ만주족을 멸망시키고 한족을 부흥시킨다)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무지의 소치이거나 소아병적 한족 중심주의의 발로이다. 왜냐? 만주족이야말로 한족을 포함해 56개 민족으로 구성됐다는'중화민족'이 지금과 같은'대가정'을 이루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 500여 년의 세월을 격해 살았던 악비와 오삼계가 만난다면 이런 얘기를 나눌 것 같다. '악비:오삼계, 네 이 놈, 어찌 나라와 민족을 오랑캐에게 팔아먹을 수 있단 말이냐? 오삼계:장군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간신들한테 역적 누명까지 쓰고 돌아가셨지만 후손들 대접이 영 썰렁하단 얘기 들었습니다.

금나라와 싸운 건 내전이라니까요. 저는 이제 좀 좋은 대접 받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오랑캐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청이 섰겠습니까? 그럼 중화민족도 없고, 영토도 명나라 때 그대로 지금의 절반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니 중화인민공화국의 으뜸 공신이지요. 세상 돌고 도는 겁니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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