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과 6ㆍ25때 활동했던 미 육군 장군. 뉴저지 출생으로 1915년 미 육사를 졸업했는데, 클래스메이트로는 나중에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가 있다. 그가 소대장으로서 참가한 최초의 주요 작전은 멕시코의 로빈훗 내지는 임꺽정이라고 해야 할 판초 비야(Pancho Villa)를 체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작전은 미군이 제멋대로 멕시코를 침공해서 벌인 것이다. 1차대전에는 미 원정군의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창립 멤버도"6·25때 아들이 전사했을만큼 난 한국엔 은인… 동상을 철거하자는 사람
2차대전 때 밴플리트는 일시적으로 진급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당시 미 육군 원수였던 마샬(Marshall)이 그를 알코올 중독자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밴플리트는 미 육군 4사단 소속 제8연대 연대장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미 육군 4사단에 배속된 사람 중에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린저가 있고, 또 노르망디 전투에는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노르망디의 조선인’으로 알려진 무명의 불운한 조선 포로들도 독일군이 되어 억지로 참전했다.
미 육군 4사단은 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을 체포하기도 했는데,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설명에서 덩치 큰 사단 단위 부대를 이동이 쉽고 빠른 ‘모듈형 스트라이커 여단’들로 분할ㆍ편성한다고 할 때, 그 사례에서 종종 언급되는 아주 전통 있는 부대이다.
1946년 밴플리트는 그리스로 파견돼 좌파 민중봉기의 진압에 관여했다. 50~51년 미2군 사령관을 맡았고 51~53년 리지웨이(Ridgway) 뒤를 이어 미8군 및 주한 유엔군 사령관을 맡는다. 6.25때 공군 비행기 조종사였던 아들을 잃기도 했던 밴플리트는, 미8군 사령관으로서 한미재단을 설립하고, 한국 육군사관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등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새로 건립된 육사 건물은 당시로서는 가장 최신식 학교 건물로, 심지어 경기중학교 등의 학생들이 단체 견학을 가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동상이 한국 육사 교정에 서있다. 퇴역 후 밴플리트는 ‘코리아 소사이어티’창립 멤버가 됐고, 92년부터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그를 기리는 취지에서 ‘밴플리트 상’을 제정ㆍ시상해왔다.
2005년 수상자는 아버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이었는데 당시 방미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만찬에 참석해 직접 상을 주었다. 올해 9월19일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연례 만찬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상을 받는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미국 내 한국에 대한 이해 증진 및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 활동”을 하는 단체로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현재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도날드 그레그의 대표 경력은 주한 미대사로 돼 있지만, 그는 이미 그 전에 만 31년 동안 미 CIA에 근무하면서 주로 아시아지역 비밀공작을 담당해 왔다. 그는 버마(현 미얀마), 일본, 베트남에서 암약했으며, 특히 ‘불새 공작’(Operation Phoenix)에 참가했다. 불새 공작은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 CIA가 베트남 독재정권을 지탱하기 위해 수행한 것인데 여기에는 요인 암살 등이 포함돼 있다.
그레그는 그 밖에도 이란 콘트라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고, 니카라과 콘트라 스캔들에서는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검찰은 삼성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과 관련해 이 회장을 아직 소환하지 않고 있는데, 이 회장은 이번 주중 밴플리트상 수상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번 연례 만찬의 티켓 가격은 최저 350달러, 최고 4만 달러다.
삼성 측 관계자가 중앙일보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회장의 수상 이유는 “이 회장이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인데다 그 동안 삼성이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 온 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밴플리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특사로서 54년에 한국과 일본 등을 방문한 뒤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Report of Van Fleet mission to the Far East, 1954), 이 보고서는 30년간 특급 비밀로 분류되어 공개되지 않다가, 지난 봄에서야 겨우 한국 언론에 의해 그 내용의 극히 일부가 보도됐다.
이 보고서는 6.25 이후 한국군의 전력 증강 시도에 대한 미국의 거센 반대, 어업 문제 및 이승만 라인 등을 둘러싼 한일간의 정치ㆍ경제적 갈등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의 압권은 독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다. 해당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정부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효적 점유를 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로 일본과 논쟁하지 않기를 미국은 바란다. 그런데 미국은 독도 문제에 관한 미국의 이런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다만 비밀리에 한국 정부에 이런 입장을 통보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재현(이하 현) 장군, 한국과 관련해 가장 기억 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밴플리트 1952년 초, 육사 11기생 입교식에 귀빈으로 참석한 것하고, 같은 해 7월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군 지프를 타고 제주도를 순시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네요. 내게 단체로 경례를 한 육사 신입생도들 중에서 대통령이 두 명씩이나 나올 줄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요, (므흣한 얼굴로) 허허.
현 제주도 지프차 순시는 사진으로 접한 적이 있습니다. 제주4.3연구소가 처음 공개한 사진들 중 하나인데, 그 사진 말고 제주 4.3사건 당시 국군경비대가 벌인 총살 현장에 미군들이 입회했던 사진이 제게는 더 인상적이었어요. 제주 4.3사건 때 미군이 직접 개입해서 한국 민간인을 마구 학살한 것 맞죠?
밴플리트 우리 미군은 결코 그런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사진들 앞에서 움찔) 아니, 노 코멘트(no comments)입니다.
현 당신 동상이 한국 육사 교정에 서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작전권을 환수하기 전에 먼저 당신 동상부터 빨리 철거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한국 사람들 생각입니다. 국토를 지키는 게 기본 사명인 국군, 그 중에서도 장래의 엘리트 지휘관을 양성하는 육사 교정에 감히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보고서를 낸 사람의 동상이 서있다니요. 철거되면 당신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합니다.
밴플리트 (머뭇거리다가) 뭐, 맥아더와 같은 거겠지요, 그런데, 그 대다수라는 게 과연 몇 명입니까?
현 한국 성인 중에 아이큐가 세 자리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밴플리트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얘기로는 그렇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현 장군을 심문하는 자리는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수세적으로 나올 필요 없습니다. 부디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밴플리트 저는 6.25때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도 아들을 찾는 수색작전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한국의 은인입니다.
현 미국 분이라 농담을 아주 잘 하시는군요.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도 6.25때 아들을 잃었습니다. 마오 주석은 아들 시신을 찾고 나서도 그 시신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오 주석 아들 무덤은 북한에 있습니다. 당신 아들은 B26 조종사였지요? 마오 주석 아들이 죽은 것은 미군의 폭격 탓이라고 합디다. 그렇다면, 당신 아들이 마오 주석 아들을 죽인 것일 수도 있어요.
밴플리트 하지만….
현 6.25때 자식이 죽은 것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당신 아들은 군인으로서 전사한 것에 불과하지만, 수십만의 남북한 민간인 부모들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 오인 사격 및 의도적인 민간인 학살 탓에 어린 아들과 딸을 잃었습니다. 아들 얘기는 하면 할수록 당신에게 불리합니다.
밴플리트 미스터 리, 당신은 왜 그렇게 비뚤어졌나요. 왜 그리 극단적인 반미주의자입니까?
현 천만에요. 저는 대표적인 친미주의자입니다. 제 대학 전공이 영어입니다. 또 미국의 락과 블루스 CD를 몇 백장 갖고서 수시로 즐긴답니다. 스콜세지 감독 영화에서 카메라가 뉴욕 거리를 조금만 보여주어도 제 가슴은 마구 뜁니다. 제가 강의하는 과목 중에 ‘세계사진사’가 있는데 그 중에 절반 이상이 미국 사진들입니다. 저는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지독하게 싫지만 그래도 단지 그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주 조금은 봐주고 있는 편입니다. 미국이 없는 저란 상상할 수가 없답니다. 어느 한국 시인이 자기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제 경우 그 8할의 바람이 바로 미국에서 불어 온 거지요.
밴플리트 친미주의에 대한 당신의 설명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요. 나는 직업 군인이라서 문화나 예술은 잘 모른답니다.
현 그럼, 독도 얘기나 해보시지요.
밴플리트 1952년에 미국과 일본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일본 영토에 관한 조항이 있습니다. 거기서 일본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독도 문제는 일본 편을 들어 처리했어요. 일본의 입장은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절대 배제하지 않겠다는 거였고 미국은 이를 수락했지요. 즉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게 미국의 입장이었던 거지요. 또 54년 9월에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죠. 제 보고서는 단지 이런 과정을 둘러싼 미국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일 뿐입니다.
현 당시 미국은 독도에 관한 입장을 한국에 분명히 밝히되 이를 공식화하지 않고 단지 비밀리에 한국 정부에 통고했다는데요, 결국 영토 문제로 인해서 한일간의 시끄러운 논쟁이 벌어지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미국 입장이 폭로되는 것을 미국 정부로서는 두려워했던 것이지요?
밴플리트 노 코멘트.
현 신문기사에 따르면 이번에 당신 이름이 붙은 상을 이건희 회장이 타게 된 이유가 결국 삼성이 그 동안 코리아 소사이어티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공로 때문이라는 건데요. 또 덕분에 미국으로 건歌?잠시 검찰 수사도 피하게 됐구요. 전직 CIA 고위 공작원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미국의 조직과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의 삼성 사이에 무슨 사전 교감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밴플리트 설령 있었다 해도 그것은 한국 검찰이 알아서 파헤칠 문제입니다. (벌개진 얼굴로) 그만 인터뷰를 끝내고 싶군요.
현 아무튼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그 회장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그럼….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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