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의 손익계산서가 변화하는 양상을 지켜본 미 국민들의 심정은 암울하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던 날 미국인과 슬픔과 분노를 함께 나눴던 세계인들의 마음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지난 5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이 얻은 것을 찾기는 어려운 반면 잃은 것을 열거하기는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미국의 손실 가운데 가장 뼈아픈 것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갖춰야 했던 도덕성의 기반을 잃어 버렸고 자연히 그에 대한 세계인의 존경심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학대에서 이라크 주둔 미 해병에 의한 하디타 마을 양민학살, 해외비밀 감옥과 관타나모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대 테러전에서 저질러진 미국의 과오는 세계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편집인 낸시 깁스는 “9ㆍ11 직후 프랑스 르몽드가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세계인들은 정당한 분노와 공통의 목적에 대해 미국인들과 정서를 공유했다”면서 “그러나 지금 미국은 해외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고 미국이 주장하는 가치와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엄중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9ㆍ11 이후의 5년을 진단했다.
미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군사력에 의존한 일방주의적 세계전략은 미국의 동맹국들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테러의 사악함에 동의하는 동맹들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에의 대처가 정당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세력 가운데 하나인 14억 무슬림들과 화해할 수 있는 기반이 무너져 내린 것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도 두고두고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진보성향의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피터 싱어 선임 연구원은 “초강대국 미국과 14억 무슬림들은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 분노로 반목하고 있다”면서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대립이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문명충돌적 요소에 이라크전 등 열전(熱戰)이 복합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어느 것에서도 확실한 전망이 서 있지 않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최근 테러가 이슬람 파시즘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무슬림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미국이 국내적으로 잃은 것은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만이 아니다. 9ㆍ11 5주년에 즈음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3분의2가 “행복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미국을 하나로 묶었던 국가통합의 기초가 약화하면서 분열된 미 국민들이 미래에 대해 한층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미 국민들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은 미 본토가 9ㆍ11 이전보다는 좀더 안전해졌고 테러와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교훈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 지는 또 다른 문제이고 미 국민이 누리고 있는 상대적 안전은 ‘영장없는 비밀도청’등 대가가 지불된 것이며 또 ‘충분한’ 안전도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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