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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저작집 출간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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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저작집 출간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입력
2006.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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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거짓과 허위를 고발하고 비판적 세계관을 제시해온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77) 전 한양대 교수. 고난을 무릅쓴 그의 역정과 사상의 면면이 ‘리영희 저작집’(한길사ㆍ전 12권)이라는 전집으로 출간됐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 그의 저서들은 이 땅의 지성과 청년에게 사상과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경험케 했다. 전집의 마지막 권 ‘21세기 아침의 사색’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거나 단편적으로 발표된 원고를 모아 이번에 처음으로 낸 것이다. 18일에는 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전집 출간에 대한 감회가 특별할 것 같은데요.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의가 왔을 때 조금 망설였습니다. 제 책이 예언하고 주장했던 내용이 이미 상당 부분 실현되거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전집으로 묶어 다시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전집 출판은 고마운 일입니다. 소설, 시 등 문학 작품과 달리 사회과학서적은 저자 생전에 전집이 나온 예가 드문데 제가 그런 영광을 누렸습니다. 살아 오면서 박해도 받고 눈물도 흘렸는데, 전집을 앞에 놓고 보니 새삼 제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보탰다는 소리를 듣고, 또 제 삶과 연구활동의 막바지를 이렇게 전집으로 장식할 수 있어서 마음이 흐뭇합니다.”

-과거 선생님의 책을 읽고 망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는 젊은이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책에 대해 스스로 어떤 평가를 내리시는지요.

“저를 핍박한 사람들은 저와 제 책을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적절한 표현입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시민이라면, 주체적 인식 능력을 갖고 생존 환경과 조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과거의 우리는 권력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런 의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잃어버린 자율성과 주체성, 인간 의식을 되찾는데 제 책이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뜻에서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했기 때문에 저는 그 호칭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책을 통해 하려 했던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거짓과 가면을 쓴 우상의 알맹이를 드러내 보이려 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이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 사회, 종교 권력의 거짓이 그것들이지요. 거짓과 우상에 현혹돼, 인격을 갖춘 자율적 인간이 아니라 허위 논리에 지배된 타율적 허수아비로 전락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인간 본연의 사고하는 모습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전집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1977년 미국으로 망명한 소련 작가 솔제니친이 20여년 뒤 귀국할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선생을 환영하고 선생의 책도 많이 읽을 것’이라고 기자들이 덕담하자 그는 ‘내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아직 남아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답니다. 솔제니친이 책에서 요구한 변화가 이미 러시아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의 책이 읽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20~30년 전 제가 했던 주장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 책의 소임이 지금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사상가는 자신의 생각이 사회에서 수용되고 실현되면, 기꺼이 뒤로 물러 앉습니다. 제 책을 읽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인세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 때, 저는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정치에 실망하는 사람이 많고 또 그런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저는 현실 정치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으며 가깝게 지내는 정치인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급적 현실의 구체적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 정치와 우리 사회를 두고 우려하는 사람이 있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사회도 일직선으로 앞을 향해서만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앞으로 갔다가 뒤로도 가고, 왼쪽으로 갔다가도 오른쪽으로 가고,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완만한 곡선을 그린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시계추와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북한 핵,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문제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북한은 80년대 말 이후 남한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사력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총력에서 그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북한 전체의 국민소득이 남한의 군사비보다 적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더 이상 재래식 무기로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미사일, 핵 개발을 추진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너무 우려할 일도 아니고, 북한의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미국의 럼스펠드 장관도 얼마 전 북한이 군사적으로 남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과거 북한의 위협을 부풀린 것이 미국이었는데 그 미국의 장관이 지금은 도리어 우리를 타이르고 있습니다.”

-지난날 선생님의 책은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 현실보다는 개인적 안락함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젊은이들이 경박하고 물질주의적이며 찰나적이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지혜를 믿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미국식 물질만능주의와 극우 논리가 결합한 왜곡된 사회를 만들었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돈과 이윤만 생각하지 말고,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어 주길 기대합니다.”

-건강은 많이 회복되셨는지요.

“6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오른쪽 팔 다리에 마비가 왔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동네 산책도 다니고 그럽니다. 병이 찾아왔을 때 하느님이 저의 역할이 끝났다는 옐로카드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 뒤로 물러나서 겸손하게 지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그랬더니 이렇게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신문 기자로, 대학 교수로 연구하고 글을 쓴 지 50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그것도 마감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현인이라도 자신의 한계를 자각해야 합니다. 저의 역할, 저의 소명이 끝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오느라 개인적 욕망은 접어두었을 것 같은데요.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요.

“화투 바둑 카드 등 잡기는 하나도 하지 못합니다. 공부하고 글쓰기만 했더니 그렇게 됐습니다. 팔이 떨려 글 쓰기도 어렵고 좋아하는 등산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피아노 같은 악기 하나 배울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피아노 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던, 아니 그런 세상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세대 입니다. 앞으로는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 ‘리영희 저작집’ 은…

‘리영희 저작집’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 1970년대의 저서와 80년대에 나온 ‘분단을 넘어서’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 ‘역설의 변증’, 90년대 작 ‘自由人, 자유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그리고 최근작 ‘21세기 아침의 사색’ 등 12권으로 구성돼 있다. ‘8억인과의 대화’ ‘10억인의 나라’ ‘중국백서’ 등 번역서와 편역ㆍ주해서는 제외됐다.

이 가운데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 등은 판금도서로 지목된 그의 대표작으로, 당대 지식인과 대학생의 필독서였다. 그런가 하면 ‘역정’ ‘대화’ 등은 그의 개인적 삶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그의 책은 북한 문제, 통일 문제, 한미관계 및 한일관계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냉전적 사고에 맞서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으며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사상의 은사’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게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부터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아홉번 연행돼 다섯 차례 감옥살이를 하고 언론 기관에서 두 번, 대학에서 두 번 쫓겨나는 등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그는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고 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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