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요? 보고도 몰라요. 여기서 하루라도 살겠습니까?”
5일 오후 찾아간 경남 진해시 웅천동 괴정마을과 수도마을. 주민들은 입구 한 켠 마을회관 외벽 전체를 시커먼 물체가 뒤덮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최근 2~3년간 깔따구와 파리 등이 일대를 휩쓸어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이 곳 어촌마을에 올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변종 파리 떼까지 들끓고 있다.
성충으로 자라도 몸길이가 채 1~2㎜가 안되고, 곤충학계에도 아직 보고되지도 않은 미기록종으로 확인된 이 변종 파리떼가 바람을 타고 일대 5~6개 어촌마을을 수시로 덮치고 있는 것이다.
썩은 연못 등 고인 물속에서 생겨난 변종으로 추정되는 이 파리 떼의 진원지가 마을 인근 신항 준설토투기장(195만평)이라는 데 어민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담수화가 진행 중인 준설토 투기장의 갈라진 틈 사이로 손을 밀어 넣자, 죽은 깔따구 등 유충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지난 2년간 깔따구 등으로 입은 피해도 모자라 올해는 생전 처음 보는 파리 떼까지 설쳐 살 수가 없습니다. 손님들이 식사하는 중에 파리 떼가 우수수 떨어지거나 식탁에 달라붙어 매출이 80%이상 줄어 폐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S횟집 주인 정태수(58)씨가 가게 서랍을 뒤지더니 뭔가를 불쑥 꺼낸다. 수년간 입은 해충 피해를 해양수산부 등 정부당국에 호소했지만 입증할만한 자료가 없어 피해확인이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나서 최근 모은 미기록종 파리 채집본과 일시 등을 적은 서류묶음이다.
수도ㆍ괴정마을을 거쳐 안성마을에서 만난 황광식(45)씨는 최근 또 다른 변종 파리가 출몰하고 있다며 증거를 내밀기도 했다.
어둠이 깔리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파리 떼가 불빛을 쫓아오기 때문에 아예 불을 꺼버린 집들이 대다수였다. 미기록종 파리는 워낙 작아 방충망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정모(61ㆍ여)씨는 “조그만 파리가 눈이나 입으로 들어가 유배생활 아닌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하루 6,7번 청소기를 돌리고 방을 아무리 닦아내도 소용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괴정ㆍ수도마을은 물론, 투기장에서 1㎞ 가량 떨어진 영길ㆍ남문ㆍ안성ㆍ안골마을 등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8월 파리떼 퇴출을 위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1년간 51억원을 들여 곤충 성장억제제인 ‘스미라브’를 3차례에 걸쳐 51톤을 살포했지만, 해충 창궐을 막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예산 확보가 어려워 이마저도 지지부진하다.
진해수협 소멸어업인 생계대책위 이성섭(44) 사무처장은 “정부가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영향평가를 엉터리로 한 결과 주민들만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신항 개발사업을 추진한 해양수산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촌마을 대표 20여명은 6일 “더는 못 참겠다”며 준설토 투기장 공사 등을 총괄하는 부산항건설사업소를 항의 방문했지만, 돌아온 답은 여전히 피해입증이 어렵다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진해=글ㆍ사진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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