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2조원이 넘는 대우일렉이 몸집이 절반밖에 안 되는 인도의 가전 회사에 사실상 매각됐다. 특히 세계 최대 가전사인 일렉트로룩스가 이 회사의 지분을 일부(5%) 소유하고 있어 앞으로 글로벌 가전 시장의 인수ㆍ합병(M&A) 바람이 거세질 전망이다.
대우일렉의 매각을 추진중인 우리은행은 8일 인도 가전 회사인 비디오콘과 미국계 사모펀드인 리플우드(RHJ인터내셔널) 컨소시엄을 우선협상자로, MBK파트너스를 차순위협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실시한 본 입찰의 최종 제시 금액과 입찰 참여자의 자금조달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이달 중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상세실사 등 세부 일정은 추가 논의를 통해 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각 금액은 7억달러(6,700억~6,800억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8억달러 이상을 제시한 말레이시아계 펀드인 네오에쿼티는 자금조달 능력에서 채권단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비디오콘과 리플우드는 50.1%와 49.9% 비율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따라서 사실상 비디오콘이 대우일렉의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79년 설립된 비디오콘은 인도 최대 가전 유통망을 갖고 있고,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레인지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기업인 톰슨의 브라운관 TV 사업부를 인수한 데 이어 올 봄에는 미국의 폴라로이드사 인수에도 참여하는 등 해외 사업 확장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비디오콘이 대우일렉을 인수하려 하는 것도 국내 보다는 해외 시장을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국내 시장의 경우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양강 구도가 워낙 공고한 반면 해외는 대우일렉의 해외 브랜드 파워와 영업망이 아직 막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우일렉은 전체 매출의 80%를 수출에서 얻고 있고 지난해 폴란드 TV 시장과 베트남 냉장고 시장에서 1위를 하는 등 지역별 우위를 보이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대우일렉은 우선협상자 발표와 관련, 말을 아꼈다. 회사 관계자는 "채권단으로부터 정식으로 통보 받은 것이 없는데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으로 매각된 것인 지도 불분명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다음주중 이승창 대표가 공식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몸집이 절반밖에 안 되는 회사에 매각된 데 대한 자조적 불만도 나왔다. 대우일렉의 연간 매출액이 2조원이 넘는 반면(지난해 매출 2조1,600억원) 비디오콘의 외형은 9,000억원 수준(2004년 7월~2005년 9월 매출 1조1,471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새우가 고래를 먹은 격"이라며 "미래기술 연구ㆍ개발(R&D)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처럼 결국 브랜드와 기술만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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