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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壽의 나이에도 식지않는 조국애, 육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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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壽의 나이에도 식지않는 조국애, 육동백

입력
2006.09.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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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통일이 돼 조국이 더욱 번성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다.”

학생독립운동의 효시인 1928년 ‘수원 고농 학생사건’을 주도한 육동백(99ㆍ사진)옹이 8일 반세기 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육 옹은 이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가 ‘한국 농학교육 100년’을 맞아 마련한 기념행사에서 ‘수원 고농 사건’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올해 나이 백수(白壽)인 그는 증손자ㆍ증손녀 같은 후배들 앞에서 “내 마음 속에는 80년 전의 독립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강조하는 등 조국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었다.

26년 서울대 농생대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 임학과에 입학한 백 옹은 동기 10명과 함께 조국 독립을 위해 몸바치기로 결의했다.

그는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학교 근처에 ‘개척사’라는 회사를 차렸다”며 “겉은 영농회사 였지만 우수 학생을 교육시켜 다시 농촌으로 돌려보내는 농민 봉기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인구 10명 중 8명이 농민이었기 때문에 농민이 일어서면 일제를 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28년 9월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30년 재입학, 이듬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육 옹은 50년대 중반부터 주미 대사관 농무관으로 근무하다 61년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에 망명했다. 81년 한국 정부로부터 독립 유공자 표창을 받을 때도 귀국하지는 않았다.

현재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그는 “미국 사람들은 한국, 중국,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데 한국인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실제 육 옹은 88세까지 직장에서 주 40시간을 일했다. 그의 근면성과 성실함을 인정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88년 그에게 ‘전미 노령 근로자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육 옹은 “평소 동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며 “한국인은 단결해야 하고 대통령도 다수를 위해 일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장수 비결에 대해 “절대 화내지 않고 자주 웃는 것”이라고 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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