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추진을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부의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한 소속 의원 13명을 엄중 경고하자 해당 의원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우리당은 8일에도 FTA 소송 제기를 놓고 파열음을 냈다. 전날 소송 참여 의원들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던 당 지도부는 이날도 강경 기조를 이어갔다. 김 의장은 “지도부와 상의하지 않고 소송에 나선 건 유감스럽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김한길 원내대표도 “동료 의원을 실망시키고 맥 빠지게 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친노 직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국회가 무슨 권한을 갖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갈등만 유발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이광재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소송 참가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강창일 의원은 “지도부가 언제 당론을 모으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느냐”며 오히려 지도부에 화살을 돌렸다. 임종인 의원도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 일인데 일방적으로 경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공방의 와중에 김근태 의장의 향후 행보와 역할에 민감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번 소송으로 여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김 의장에게 큰 부담이다. 하지만 이번 파문이 김 의장의 정치적 보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소송에 김태홍 유선호 유승희 이기우 정봉주 홍미영 임종인 의원 등 다수의 재야파 의원이 참여한 것은 김 의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특히 김 의장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이인영 의원까지 소송 명단에 올라 있다. 의장 비서실 관계자조차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 내린 결정이라지만 김 의장의 입장도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할 정도다.
하지만 정반대의 해석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의 ‘졸속 협상’에 비판적 시각을 가져온 김 의장이 당 지도부라는 위치 때문에 제약 받았던 정치적 입장 표명의 기회를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중진의원은 “김 의장이 이번 소송으로 곤란에 처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여권 내 찬반 논란이 본격화하고 협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경우 김 의장의 정치적 행보는 빨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청와대측은 김 의장이 한미FTA 협상 추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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