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우려가 사실은 있다. 그러나 바깥으로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8일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 말은 우선 정부가‘동북공정이 중국 정부의 전략에 따라 이루어지는 역사왜곡 프로젝트’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문제의 논문을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 없다”던 전날 외교부 당국자의 비공식 발표와 상반된다. 결국 지난해 10월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동북아역사재단 설명자료를 통해 밝힌 내용이 정부의 본심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 자료에서 외교부는 동북공정 연구논문을 주도하고 있는 ‘변강사지 연구중심’이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내 대표적 전략연구소로 중국 정부의 외교전략 틀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관점이라면 정부는 발해사 등 최근 동북공정 논문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따라 2004년 8월 한중간에 합의한 구두양해사항 위반이라며 중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당시 5개항의 구두양해 사항은 역사문제로 인한 한중 우호협력 관계의 손상 방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외교부는 고구려사에서 발해사, 기자조선 등으로 넘어온 최근의 동북공정의 왜곡논문에 대해 “중국정부 입장이라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는 것도 아니다(6일 이규형차관)”, “중국의 공식입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한중 구두양해 위반이 아니다”(7일 비공식 브리핑)는 식으로 뒷걸음을 치고 있다. 대응 방안 역시 ‘연구논문 검토 후 외교적 대응여부 검토’(6일)에서 ‘교과서 기술 등 공식입장이 될 때까지 문제제기 불가’(7일)로 밀렸다.
결국 시선은 정부가 왜 상황 인식과 다른 대응 태도를 보이는지에 쏠린다. 일본교과서 왜곡과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등 역사문제로 정상회담까지 중단한 정부다. 대미 외교 역시 밀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그런데도 유독 중국 동북공정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저자세를 보이는지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외교의 일관성 및 신뢰성에 중대한 흠집이 될 수 있다.
일단은 정부가 “역사문제는 어떤 사안도 연계 시키지 않고 대응하겠다(6일 외교부 정례브리핑)”는 발표와는 달리 북핵 등 대북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북핵 문제는 당면한 구체적 문제인 만큼 해결단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역사문제로 중국과 부딪힐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발해사 등에 관한 학술적 대응 능력 부족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이 학계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교적 대응을 할 경우 학술 대결이 수반될 텐데 고대사에서 중국과 맞붙을 경우 승산이 크지 않다”는 얘기가 떠돈다. 실제로 외교부에도 “섣부른 대응으로 발해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해사 전공인 한규철 경성대 교수는 “‘발해가 말갈사’라는 중국 논문의 내용은 역사적 논란거리”라며 “당분간 학계에 맡겨놓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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