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리는 작가 보르헤스는 '바빌로니아의 복권'이라는 흥미로운 단편소설에서 제비뽑기에 의해 운영되는 가상의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제비뽑기는 '회사'라고 불리는 기관에 의해 시행되는데 처음엔 하층계급을 대상으로 당첨된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제비뽑기는 곧 대중의 무관심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래서 창안된 것이 행운의 숫자들 사이에 불운의 숫자를 끼워넣어 복권 구매자 가운데 상금을 받는 사람 외에 벌금을 무는 사람이 생기는 방식이었다.
● 보르헤스의 '제비뽑기 사회' 우화
그러자 복권을 사지 않는 사람은 소심한 사람, 즉 겁쟁이로 간주되고 주민 전체가 복권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회사는 판돈을 늘리고 공포와 희망을 다양하게 조절함으로써 제비뽑기를 한 사회를 유지하는 제도로 정착시키기에 이른다. 지도자의 선출에서부터 각종 여흥거리나 희생자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제비뽑기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 우화에 등장하는 회사는 어쩌면 국가를 가리킬 수도 있고 절대자를 상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의미심장한 언급에 따르면 바빌로니아는 '우연들의 영원한 놀이'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는 우연의 작용을 최소화하고 능력과 노력을 숭상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현실의 질서 속에 우연이 개입하는 것을 되도록 방지하는 것이 상식적인 차원에서 더 공정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연에 대한 믿음은 숙명론을 조장하며 게으름과 미신을 초래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노동과 생산성을 지상가치로 떠받드는 모든 체제가 비난해 마지않는 것이다.
이 우연에 의존하는 인간의 행위 가운데 가장 악성적인 것이 바로 도박이다. 도박은 오랜 근검 절약과 힘든 노동을 우롱할 뿐 아니라 당첨이나 대박이라는 행운의 유혹으로, 반복으로 이루어진 일상으로부터의 과감한 탈출을 상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최근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사행성 게임의 만연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책 실패를 자성한다면서 노골적으로 파문의 반경을 축소하고자 하는 국정 책임자의 목소리에서부터, 해당 업계와 정ㆍ관계가 서로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만들어낸 추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식이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도박 중독에 대한 사회심리적 분석도 행해지고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도박을 좋아했다는 민족 심성에 관한 수상한 역사적 설명도 곁들여지고 있다.
● 국토는 투기장, 선거는 한탕주의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래서 자기 능력에 절망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연이나 운명에 목을 매는 사람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 국토가 부동산 투기장이 되도록 부추기고 주요 선거를 한탕주의가 지배하는 승부사의 오락으로 만들어놓고서 어차피 돈의 행방을 좇을 수밖에 없는 업자들에게 기업윤리를 요구하거나 가난한 서민들에게 건강한 시민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남진우 시인ㆍ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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