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꿈 / 게르하르트 비스네프스키 지음, 박진곤 옮김 / 달과소 발행ㆍ1만6,000원
모든 음모론은 실체적 진실을 향한 갈증에 기생한다. 그 어떤 형식적 진실도 우리의 이성 혹은 감성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못하며, 그 간극 사이에서 음모론은 부화하고 증식한다. 또 음모론은 대체로 약자의 논리 위에 제 정당성을 세운다. 형식적 진실은 권력자의 심판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행위라도 정치논리의 바깥으로 탈주하기 힘든 이 권력 지배의 사회에서 심판자 솔로몬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주의자의 서글픈 꿈일지 모른다. 적지않은 폐해- 말초적 흥미와 정서적 혼란, 사회적 불신과 분열 등 - 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음모론이 세상 한 부분을 지지하는 힘을 지녔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인류는 달에 발을 디딘 사실조차 없고 아폴로11호의 위업이란 권력과 과학이 야합해 낳은 사생아일 뿐이라는 음모론적 믿음이 다이아나의 노쇠한 신화를 지탱해주듯이 말이다.
9ㆍ11사태 5주기를 맞아 여러 ‘음모론’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회자되고 있다. ‘루스 체인지 911’ 다큐멘터리 필름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전파되고 있고, 기왕에 나온 여러 책들이 다시 들먹여지고 있다.
그 가운데 독일의 저명 다큐멘타리 제작자인 게르하르트 비스네프스키의 ‘제국의 꿈’은 사태의 전모를 실증 자료와 관련자 진술, 정황 증거 등을 토대로 밝혀나간 책이다. 2004년에 번역ㆍ출간된 이 책은 ‘음모론’의 논리정합성과 근거의 타당성 면에서 돋보인다.
저자는 책에서 9.11에 대한 미국 정부 발표의 ‘6하’ 가운데 ‘언제’ ‘어디서’를 제외한 모든 것을 다시 묻는다. “과연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우선 그는 테러범으로 지목된 19명의 행적과 경력 등을 추적한다. 이들은 ‘거사’를 앞두고 과속 단속에 걸려 딱지를 떼이고, 면허증을 제출하지 않아 수배되고, 술값 시비로 말썽을 피운다. 마트에 가서 대형 포장 면도크림과 콘돔, 로또복권을 구입한다. 저자는 “무엇인가를 사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상식에 기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과연 이들인가?’ 어쨌든 ‘그들’은 골판지 절단용 커트와 나이프 만으로 승객과 승무원들을 단숨에 제압하며 여객기 4대를 납치한다. 평범한 대학생이거나 1년차 남짓의 아마추어 비행 훈련생, 스포츠용 경비행기나 몰 수 있는 자가용 면장(PPL) 소지자들이었지만, 곡예라 해도 좋을 도심에서의 급경사 커브비행 기술을 선뵈며 자살 테러에 성공한다.
저자는 이들의 비행이력으로 볼 때 그 날의 ‘환상적 비행술’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비행술 전문가들의 증언을 빌려 설명한다. 월가에 거액의 판돈을 건 희대의 도박꾼이 당신이라면 과연 이들 ‘초짜’를 내세웠겠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사건 당일 여객기들이 이륙한 뒤 보인 기이한 행적들(저공 비행과 순간적인 실종, 항로 이탈 및 우회), 관제탑과 미군 사령부의 항공사고 대응 시스템 마비, 사고기 탑승 승객들의 전화 통화의 의문점, 납득할 수 없는 사고 현장 모습과 수습 과정, 승객 시신들의 행방, 블랙박스의 비밀 등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자신의 음모론을 정교하게 이어간다.
그러면서 1960년대 미 군부가 대 쿠바 전면전 도발을 위한 대통령 설득용으로 극비리에 입안했던 ‘노스우즈 작전’의 적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비행기 바꿔치기를 통한 자작 테러의 가능성이다. 저자는 미 제국의 자작 테러 전력들- 베트남전 확전으로 이어진 1964년의 통킹만 사건, 1898년 미국의 대스페인 선전포고의 발판이 된 전함 메인호 폭파 조작사건 - 등을 환기시킨다.
9ㆍ11의 실체적 진실은 ‘그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만이 알 일이다. 따라서 이 책의 진실성에 대한 판단 역시, 모든 음모론이 그러하듯,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염두에 둘 것은, 이런 섬뜩한 음모론을 끊임없이 낳고 키워가는 현실, 이 모호한 실체적 진실 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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