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우화는 그 순진함이나 용기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진실은 반드시 진실대로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인간생활의 진리를 것만도 아니다…> 리영희 선생의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옷을>
첫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의 맨 앞에 실린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의 첫 구절이다. 그는 알몸이 훌륭한 옷처럼 거짓 꾸며지듯이, 허위가 진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왕국의 구조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격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 지적 후퇴가 강요되느냐를 밝히고자 했다.
▦ 좌우의 어느 정치ㆍ이념적 권력도 그의 비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진실을 가장한 거짓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하려는 개인ㆍ집단ㆍ이념을 드러내는 것이 필생의 목표였다.
구속과 해직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문기자 출신의 이 언론학자에게는 '사상의 은사'와 '이식화의 원흉'이라는 상반된 수사가 따라붙었다. 자신의 책에서 영향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을 감옥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마르크시즘이나 레닌주의가 아니라 진실, 사상의 자유, 휴머니즘이었다.
▦ 자신의 노선을 중도좌, 즉 사회민주주의라고 밝힌 적이 있는 그는 마르크시즘이나 레닌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 왔다.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도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된다고 말한다.
균형은 새의 날개처럼 좌우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를 넓혀가고 있다. 이 역시 그가 보여준 넓은 사상의 지평, 좌우 균형감각이 올바른 역사적 통찰이었음을 보여 준다.
▦ 진실을 위해 몇 번이고 쓴 잔을 피하지 않은 언론인, 역사의 거대한 변혁 앞에서 자기 지적 오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도 한 용기 있는 지식인, 후학에게 다정다감했던 학자는 18일 '저작집(12권) 출간기념회'를 갖는다.
이에 맞춰 연구와 집필 등 50여년 간의 지적 활동을 접는다. 치열했던 지식인 시대의 한 장(章)이 역사 저편으로 넘어가는, 쓸쓸하고도 장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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