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는 연령대별로 큰 차이가 난다. 10, 20대는 학교폭력과 학업 부담, 진학ㆍ취업에 남모를 고민을 하고, 중ㆍ장년층은 가정 경제의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른다. 60대 이상 노인들은 생활고와 각종 질환으로 자살을 떠올린다. 결국 자살을 예방하려면 연령대별로 맞춤형 대책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자살의 원인이 개인별ㆍ세대별로 다양한 만큼 만병통치식의 자살예방대책은 있을 수 없다”며 “연령대별로 특화한 자살 요인을 꼼꼼히 분석한 뒤 ‘생애 주기’에 따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연령·개인별 원인 무시 판박이 대책 NO"
●소리 없이 목숨 끊는 노인들
2005년 1월~올 7월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피상담자를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20대(37.6%)가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은 3.5%로 가장 적었다. 그러나 지난해 자살자 1만4,011명 중에는 60대 이상(33.6%)이 가장 많은 반면, 20대(10.2%)는 10대(2.3%)에 이어 적은 편이었다. 60대 이상은 혼자 끙끙 앓다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60대 이상 자살자는 2000년 2,329명에서 지난해 4,706명으로 5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정보 격차 해소 ▦복지정책과 병행 두 차원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이명수 센터장은 “노인들은 자살예방 기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고 인터넷 이용도 어렵다”며 “젊은 층과의 정보 격차가 자살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내년부터 노인정 노인복지관 등에 ‘긴급 콜’ 전화를 설치하려는 것도 노인들의 자살상담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보건복지부 이원희 정신보건팀장은 또 “노인 자살은 주로 생활고, 사별, 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만큼 질병 관리와 일자리 제공 등 노인복지정책 차원에서의 예방책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나를 말하고 싶은 10대들
10대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조그만 충격에도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어이없는’ 자살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살의 원인이 비교적 정형화한 중ㆍ장년층과 달리 가정문제, 학업 부담,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등 학교ㆍ가정생활에서 파생된 다양한 이유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유명인이나 주변 사람이 자살했을 때 따라서 목숨을 끊는 ‘모방 자살’이 빈번한 것 역시 10대 자살의 특성이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전준희 위기관리팀장은 “청소년들이 어른들에 비해 고민의 폭은 넓지만 깊이는 얕다“며 “따라서 상담 등을 통해 90% 이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임감 시달리다 떠나는 30~50대
30~50대 남성들은 대개 집안의 가장으로 경제적 문제를 책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나 사업실패 등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돼 자신도 모르게 만성적인 우울 증세를 보인다. 이명수 센터장은 “우울증 검사를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직장 내 자가검진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의료비 지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 서울市 광역정신보건센터 상담실 긴박한 24시
“요즘 너무 우울해요. 잠이 없어졌어요. 새벽 4시에 자요. 낮잠도 안 자요. 죽을 것 같은 예감이 자주 들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을 아주 많이 해요. 머지않아 죽을 것 같아 항상 불안해요. 밥도 잘 안 먹어요. 입맛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아무 소리도 듣기 싫고. 그냥 눈감고 영원히 안 깼으면 좋겠어요.”
6일 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상담실. 잔뜩 긴장한 전문상담원들 앞에서 19인치 컴퓨터 모니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들의 사연들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었다. 상담원들의 눈빛은 인터넷 자살 상담란을 통해 한 줄 한 줄 넘어오는 문장 내용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심리 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
“보세요. 지금 이 상담자는 문장이 간결하죠. 그리고 (타이핑) 속도도 빨라요. 이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살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잔뜩 화가 나 있다’는 신호일 경우가 많아요.” 잽싸게 상대를 읽어낸 상담원 이구상(35)씨는 “이런 분들은 흥분한 원인을 찬찬히 알아낸 뒤 적절하게 달래주면 스스로 안정을 되찾곤 합니다”라고 처방을 내놓는다.
11시40분께. ‘띵~동.’ 컴퓨터에서 느닷없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인터넷 상담 요청이 있다는 경보음이다. 상담원 손기화(32)씨가 날 듯이 컴퓨터로 달려가 앉는다. 상담자의 IP주소를 확인해보니 5일부터 8차례 상담을 신청, 센터 상황판에도 ‘집중관리 대상’으로 따로 분류된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취업을 못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는 걸 끝내면 좀 편해지겠죠. 그러면 더 이상 힘들지 않겠죠. ”
“자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세요?”
“일주일째 내내 그(자살) 생각뿐이네요. 어젠 (죽으려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는데….”
문장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한 손 상담원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30대 남자는 끝내 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고 사정한 끝에 7일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고는 겨우 상담을 마쳤다.
손 상담원은 “이 분처럼 정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접 통화를 하든지 아니면 만나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옆에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며 “소재파악이 안돼 출동을 하지 못할 때는 누가 죽어가는 것을 두 손 놓고 바라보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2005년 1월 문을 연 센터는 지금까지 1만여명을 상담했다. 긴급 출동은 월 20회 정도. 끝내 소재 파악이 안 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상담자가 지금까지 4명이라고 한다.
7일 새벽까지 센터에는 부모님에 떠밀려 싫어하는 악기를 전공했다가 견디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10대, 결혼을 보름 앞두고 배신 당했다는 20대 여성,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50대 중년 가장이 전화로, 인터넷으로 상담해 왔다.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끈은 놓지 말라”는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를 듣고싶어 하는 불행한 우리 이웃들이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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