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쯤이었다. 바람 쐬러 옥상에 나갔는데 무심코 뒷담을 보니 웬 남자가 담장 위에 두 팔을 포개어 얹고 구부정히 고개를 숙여 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도 나와 마주쳐서 좀이라도 놀랐겠으나 아무 내색 않고 담담히 자세를 유지했다. 그와 나는 우두커니 마주봤다. "어디 사시는 분이세요?" 망설이다 묻자 그가 웅얼거렸다.
내가 "뭐라구요?"하자, 그는 귀찮은 기색으로 조금 명확하게 들려줬다. "지나가는 길이라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아, 지나가는 분이시라구요"라면서, 그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봤지만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남의 집 뜰을 들여다보는 낯선 사람이라니 무심히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그를 바라보았지만 역시 할 말이 없었다. 그 동안 그는, 자기가 누가 알은 체를 한다고 해서 자리를 뜰 사람이 아니라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랑 누가 나중에 움직이나 시합을 할 수도 없고. 뒤숭숭한 기분으로 방에 들어왔다. 잠시 후 나가서 살짝 살피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갔음직한 방향으로 달려가 골목을 내려다봤다.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보안등 밑을 한가로이 걸어갔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