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3차 본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 문제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당청간 이견이 표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내홍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갈등의 직접적인 계기는 열린우리당 소속 13명의 의원이 민노당 의원 등과 함께7일 한미 FTA를 추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이들은 소장에서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추진해 국회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점을 소송 제기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 최대 국정과제로 설정해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 FTA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앞장서서 제동을 거는 것이어서 만만치 않은 파장이 일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과연 여당이 존재하는 것이냐”, “저게 과연 당이냐” 등 여권의 혼선과 이견을 우려하는 얘기들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에서도 상당한 불만이 쏟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청갈등의 양상도 빚어졌다. 한 친노(親盧)직계 의원은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 해외순방 중에 여당 의원들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하더라”고 전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밤 긴급모임을 갖고 소송에 동참한 소속의원 13명 전원에 대해 경고조치를 내리는 초강수를 뒀다. 우상호 대변인은 “당정협의를 통해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데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절치 않고,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중차대한 행위를 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도부 전원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한 비대위원은 “성명서 수준이라면 모를까 여당 의원들이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명백히 잘못된 행위”라고 못박았다.
이처럼 당 지도부가 전례없이 강경한 입장을 천명한 데에는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협상 자체가 휘발성이 큰 사안일 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이 소송이라는 방식을 들고 나온 것 자체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엔 당장 이번 소송 때문에 당청간 갈등은 물론 당내에서까지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일 것이란 우려가 상당했다.
하지만 소송 참가 의원들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의원은 “전체적인 통일성을 기해야 하는 지도부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우리는 여당 소속이기 이전에 국민의 대표”라고 강조했고, 또 다른 의원은 “솔직히 지금껏 당 지도부가 한미 FTA협상과 관련해 진지하게 의견을 수렴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느냐”고 따졌다.
일각에선 소송 참여 의원들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 초선의원은 “정부의 일방적인 협상 개시나 정보 부족 문제는 국회에 계류중인 통상절차법 제정을 통해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데도 소송부터 하겠다고 나선 건 정략적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하반기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예상됐던 한미 FTA협상은 이번 소송을 계기로 여권 내부의 핵 분열을 가속화할 유력한 기제로 급부상하는 형국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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