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어느 장관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부처 산하의 위원회에서 회의를 할 때 위원 중 한 명인 대학교수가 기발한 제안을 했다. 귀가 솔깃해진 그 부처의 간부들이 이를 정책화하려 하자 교수가 기겁을 하면서 한 말이 걸작이었다. "아니, 그걸 진짜로 실시하려고 그러십니까?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건데요" 장관은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교수들 중에 얼마나 엉터리나 대충대충이 많은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 학문세계와 현실정책의 괴리
이 정부 들어 위원회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종 위원회가 활발하게, 더러는 유명무실하게 가동되고 있다. 그 위원의 상당수 또는 대부분이 교수다. 교수들의 발언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소속 인사들의 공직 참여양태를 분석한 자료에서도 다시 확인됐지만, 대학교수는 공직 진출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해당 분야에 대한 학문적 체계가 갖춰진 것으로 보이고 인격적으로도 흠결이 없을 것이라는 신뢰를 얻기 쉽다. 이른바 학식과 덕망이라는 조건을 살려 교수들은 정치적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한다. 선비의 본령을 修己治人(수기치인)이라고 하지만 자기를 닦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일에 교수만큼 적절한 캐릭터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발언 중에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비현실적이거나 그야말로 '말을 하자면 그렇게 되는' 공소(空疎)한 탁상공론도 물론 많다. 학문적 논의의 마당과 현실 정책의 마당은 어차피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론이며 이상일 뿐일 수 있다. 이론의 틀을 따지고 논리적 체계를 중시하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비현실적일수록 오히려 더 그럴 듯 하고 빛이 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것보다 학문적 신념과 소신을 바꾸는 일이다. 교육부총리로 내정된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부총리에 내정된 이후, 평소의 철학과 소신에 상반되는 발언을 하고 있어 인사청문회에서 따지려고 벼르는 국회의원들이 많다.
"학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조건 없이 의견을 말한 것과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변명이다. 각종 논문과 기고, 저서를 통해서 평준화정책을 비롯한 이 정부의 평등주의 교육정책을 비판해온 그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공직자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행은 물론 생각도 자유롭지 않게 되는 것이며 갖가지 제약과 조건이 부여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뜻이다. 민간인일 때의 생각과 논리를 견지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교육 외적인 사건이 많고 교육이념으로 인한 갈등의 중심에 있는 부처의 장은 운신의 폭도 그리 넓지 않다. 그의 전임자들 중에서도 교육부를 맡고 난 뒤에는 교육부 밖에서 외치던 소리와 정반대의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사람들이 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살다 보면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나 깨달음을 통해 소신과 논리를 고치거나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소신 변경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변절이라고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다.
김 내정자는 차라리 "내 철학은 이 정권의 이념과 다르지만 일단 맡기로 한 이상 최선을 다해 포부를 펴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어야 옳다. 아니면 "생각을 바꾸려 한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 '변절'한 교육부총리 내정자
한 인간에게는 수많은 얼굴이 있지만 후세에 알려지는 얼굴은 하나다. 예를 들면 수염을 기르지 않은 링컨은 링컨답지 않으며, 모차르트의 경우에도 초상화는 많지만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의 얼굴은 하나다.
그렇게 얼굴이 하나로 남듯이 학자의 소신과 철학에도 대표적인 얼굴이 하나 있다. 그것을 특별한 이유 없이 바꾸는 것은 학자적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며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라는 무책임한 태도와 다름없다. 고위 공직을 맡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함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임철순 칼럼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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