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다. 수화기의 낯선 목소리가 기자를 찾았다. 낙동정맥 금강소나무 복원 국민운동본부(회장 최노석)인데 경북 울진 소광리로 떠나는 금강소나무 체험단 모집 홍보를 부탁한다고 했다. 귀가 번쩍 띄였다. 금강송이 무엇인가. 또 소광리가 어떤 곳인가.
木+公. 공(公)이란 존칭을 붙인 유일한 나무인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것이 금강송이다. 적송, 황장목, 춘양목, 미인송 등 여러 이름표를 함께 달고 있는 나무이다. 소광리는 100년 넘은 금강송이 밀집한, 개발과 벌목의 칼끝을 피해온 오지중의 오지. 금강송을 궁궐의 대들보와 왕족의 관으로 쓰기 위해 조선 숙종 때부터 벌채를 금해왔고, 1959년 육종림 지정 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금강송을 위한 금단의 땅이다.
그 소광리의 금강송 숲에서 별을 헤아리며 하룻밤을 보낸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기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게 빈 자리 하나를 부탁했고, 소광리로 떠나는 야영길에 동석할 수 있게 됐다.
서울에서 소광리까지는 먼 길. 봉화읍까지의 고속화도로를 벗어나자 구불구불한 국도는 깊은 산허리를 돌고 오르내리며 소광리로 안내한다. 36번 국도상의 광천교에서 917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자 불영계곡 물의 원류인 대광천 계곡이 길 옆이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까지 40리 길의 3분의 2는 콘크리트 포장, 나머지는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길. 좁은 길은 내를 수 차례 건너며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른다. 차창에 비치는 물은 거울같이 맑았고 물을 담은 바위도 방금 쪼갠 화강암마냥 눈부시게 하얗다.
30여 분 계곡과 희롱하며 느릿느릿 달려가 만난 금강소나무 군락지. 주차장에서 내려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니 금강송이 머리 위로 드리운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듯, 쭉쭉 뻗어 오른 금강 소나무. 일행들은 이리저리 뒤틀리고 휘어진 것이 우리의 전형적인 소나무로만 알았다가 이처럼 매끈하면서 기품 있는 나무가 토종 중의 으뜸 소나무란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산림청이 감추어두었던 소광리숲을 일반에 공개한 이유와, 금강소나무 복원 국민운동본부가 발족한 이유는 다르지 않다. 거침없이 솟은 늠름한 기상의 금강송을 일반에 널리 알리고, 더 많은 금강송이 자랄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는 것. 예전 우리나라 나무의 절반 이상은 소나무였다. 이후 솔잎흑파리에 병들고 땔감용 등의 남벌로 이제는 24%만 남았다고 한다. 이중 금강송은 궁궐의 대들보나 기둥, 왕실의 관에 쓰이는 최고의 목재로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직접 관리를 했던 귀한 나무다. 일제시대 대대적인 약탈로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
주차장에서 200m 올라가니 520년 됐다는 소나무가 영험한 모습으로 서있다. 지름이 1m를 넘어 장정 두 셋이 팔을 합쳐야 껴안을 수 있을 정도로 둥치가 우람하다. 본격적인 금강송림 탐방은 이제부터 시작. 30~200년 된 금강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새로 조성한 금강송 후계림에선 어린 솔잎의 연둣빛이 곱다. 임도와 계곡과 이어진 산책로는 제1, 2, 3 관찰로 등 모두 3곳. 전체를 둘러보는데 2시간 가량 걸린다. 진한 솔향 코 끝을 자극하고, 크게 들이쉰 숲 기운이 머리까지 맑게 하는 송림욕 코스다.
주차장에서 1km 가량 아래에 화전민 집단 정착지였던 마을이 있다. 1960년대 울진 무장공비 사건 이후 산 속에 흩어졌던 화전민들을 강제로 한곳에 모은 집단 취락지. 지금은 외지에서 들어온 이들을 포함해 5가구가 살고 있다. 정부가 지어준, 번호가 그대로 남은 당시의 가옥이 반쯤 부서진 모습으로 아직 남아있다.
해가 저물고 마을 앞 공터에 쳐놓은 텐트에서 밤을 맞았다. 한데 모인 일행들은 서로를 소개하고, 금강송을 보고 느낀점을 공유하며 하루를 보냈다. 새벽녘 깊은 산속의 한기에 잠을 뒤척이다 텐트를 나섰다. 여명에 아스라이 고운 모습을 드러낸 금강송 숲. 산 너머로 해가 떠오르자 불그스레한 나무 둥치 사이로 사선의 빛이 부서져 들어온다. 금강송들의 의젓한 푸르름이 눈을 시리게 했다.
▲ 낙동정맥 금강소나무 복원 국민운동본부의 금강송 군락지 체험 행사는 9월과 10월 매 주말 진행된다. 토요일 오전 8시 서울 잠실에서 출발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과 봉화 춘양의 서벽 금강소나무 숲을 돌아보고 다음날 오후 6시께 서울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 소광리에서의 텐트 야영은 아쉽게도 1회 행사에서 종료됐다. 야영하기에는 날이 너무 추워졌기 때문. 대신 서벽 금강소나무 숲 인근의 민박집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매회 선착순 40명 모집. 참가비는 5만원. (02)455-4122, 1006
소광리(울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봉화 금강송숲·창수전시림… 명품숲 4곳 일반에 개방
울진 소광리숲은 남부지방산림청이 7월부터 일반에 개방을 시작한 ‘명품숲’ 4곳 가운데 하나다. 그 동안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며 아름답게 가꾼 숲을 이제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나머지 명품숲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의 금강송숲, 영양군 수비면 본신리의 미림단지,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의 창수전시림이다. 모두 이제껏 20~40여 년 통제됐던 곳들이다.
봉화 춘양의 서벽리 금강송숲은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보존 육성된 곳이다. 서벽은 이창동, 김기덕 두 유명 영화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을 서쪽을 문수산과 옥돌봉 줄기가 가로막아 서쪽이 벽이라고 해서 서벽이라고 한다. 봉화의 3대 약수 중 하나인 두내약수터 뒤쪽 자락에 금강송 숲이 있다.
80ha의 면적에 30m를 훌쩍 넘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잘 다뎌진 탐방로를 한바퀴 도는 데 대략 30분 정도. 오르막 경사가 꽤 되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꼭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 쯤에는 앙증맞은 나무 벤치가 조성된 쉼터가 곳곳에 마련돼 송림욕을 편안하게 이어갈 수 있다. (054)633-7278
영양군 영양읍내에서 영덕을 잇는 918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영덕과의 경계 지점에 창수령이란 고개가 있다. 창수령 정상 인근에 영덕국유림관리소에서 조성한 170ha규모의 창수전시림이 있다. 가래나무 소나무 잣나무 등 14개 수종이 조림돼 있다. 안내판이 잘 정비돼 있어 생소한 나무와 풀을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체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변 산과 산들의 행렬이 파도마냥 일렁이는 풍경도 장관이다. (054)732-1604
경북 영양군 수비면 본신리 일대의 미림단지(美林團地)는 이름 만큼이나 숲도 아름답다. 1,839ha의 넓은 산자락에 금강송을 축으로 다양한 나무들이 조림돼 있다. 봉화의 서벽처럼 문화재 복원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된 곳이다. 금강소나무림의 후계숲 조성을 위한 시범림이기도 하다. 주변에 검마산자연휴양림이 있다. (054)732-1604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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