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냄새가 완연히 달라졌다. 폭우와 물난리에 이어진 지루한 폭염. 되돌아보면 무척 고생스럽고 길고 진한 여름이었다. 그러나 계절은 끈덕지게 붙어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틈엔가 훌쩍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것. 이제는 가을의 분위기가 대세다. 가을 분위기를 맞으려 굳이 깊은 산이나 먼 농촌으로 떠날 필요는 없다.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꽃이 핀 공원에서, 가까운 외곽의 들녘에서도 가을은 열심히 여름을 밀어내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찾아보았다.
1. 여름 내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졌던 서울 덕수궁 돌담이 짙고 시원한 가로수 그늘에 식어간다. 화창한 햇살이 아직은 톡 쏘는 듯한 열기를 품고 있지만,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진다. 짙은 그늘숲에 들어 바람을 맞으면 벌써 으슬으슬한 한기까지 느껴진다.
2.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바라본 하늘. 서울의 대기환경이 많이 개선된 것일까, 아니면 바람 부는 날이 많아서일까. 올 초가을의 서울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는 여름꽃 웨이브 페튜니어가 파란 하늘색을 더 푸르게 한다.
3. 가을은 숲속 동물에게도 풍요로운 계절이다. 관악산 등산로 옆의 한 바위 위에서 다람쥐가 햇도토리를 까먹고 있다.
4. 가는 여름이 아쉬운 것일까. 과천 서울대공원의 황화코스모스밭 울타리에 앉은 참새 한 마리가 무언가를 응시하면서 가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5. 도시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은 뭐니뭐니해도 고추잠자리. 뜨거웠던 여름 내내 시원한 산 위에서 지내던 고추잠자리가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따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까지 내려왔다.
6. 가을의 기쁨 중 으뜸은 수확의 즐거움일 것이다. 경기 양평군의 한 마을에서 어르신이 겨우내 소에게 먹일 옥수수를 나무에 매달아 말리고 있다. 누런 옥수수의 색깔에서 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7. 도심의 아스팔트 위에도 가을의 수확은 축복처럼 찾아왔다. 남산 순환도로에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에서 포도송이 같은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8. 인천 강화도의 한 농가에서 아주머니가 수확한 고추를 맑은 햇볕에 말리고 있다. 우리의 전형적인 가을 풍경이다. 이제 전국 농촌의 마당과 빈터마다 고추가 빨갛게 깔릴 것이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글ㆍ사진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