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헌법 개정에서 핵 무장까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 정권의 지향점이 드러나고 있다. 보수 우익 세력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아베 정권의 목표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국가 일본’을 실현하기 위해 패전 후 불만스럽게 짊어져온 일본의 ‘굴레’를 벗어 던지는 것이다.
●아베 장관의 전후(戰後) 금기 깨기
20일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차기 총리가 유력한 아베 장관은 6일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반성했던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표명했다. 아베 장관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담화를 계승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차기 내각이 그 때 가서 과거 전쟁에 대한 인식을 밝혀야 한다”고 얼버무렸다.
이 같은 태도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기존의 역사 서술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해 온 아베 장관의 역사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사석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비판적 자세를 취해 온 것으로 알려진 아베 장관은 자신이 총리가 될 경우 일본이 처한 이 같은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민당 총재선거 사상 처음으로 헌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자민당이 제시한 헌법 초안을 다시 고쳐서 자위군과 집단적 자위권의 보유를 분명히 할 생각이다.
일본의 교육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기본법의 개정도 공언했다. 외교적으로는 ‘주장하는 외교’‘강한 일본, 의지할만한 일본’을 내세우며 이웃 국가들과의 대결자세를 강조했다. 미국과 인도, 호주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골칫거리인 한국과 중국을 따돌리겠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또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정당화하고, 일본 전후 체제의 출발점인 도쿄전범재판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싸우는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핵 무장론도 정면으로 다룰 듯
아베 장관의 금기 깨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유일한 원자폭탄 피폭 국가인 일본에서 절대 금기로 통했던 핵 무장론 마저 그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운영하고 있는 일본 내각부 산하의 세계평화연구소는 5일 핵 무장론의 검토 필요성을 정식으로 제기했다. 요지는 향후 국제사회의 대변동에 대비해 핵 문제를 검토해 야 한다는 것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기자회견서 “비핵보유국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그 다음”이라고 전제를 달았지만 그 동안 봉쇄됐던 일본 내 핵 무장론의 봉인을 떼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약속이라도 한 듯 아베 장관의 핵심 브레인인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교토(京都)대 교수도 최근 핵 무장론에 대한 책‘일본 핵무장의 논점’을 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나카소네 전 총리와 대표적인 친미 보수 논객인 나카니시 교수의 아베 장관에 대한 영향력, 작금의 아베 장관의 행태 등을 고려할 때 향후 일본 정부가 핵 무장론을 공론화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자위를 위해 최소한의 한도를 넘지 않으면 핵 무기든 일반 무기든 그것을 보유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2002년 5월 13일 와세다대 강연)고 밝힌 바 있는 아베 장관에게 정부 내 공론화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나카니시 교수는 일본의 핵 무장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그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논리의 출발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로 인한 일본의 안보위기와 미국 핵 우산에 대한 불안감 내지 불신감이다.
전후 일본에서는 보수강경파 정치가들이 반복해서 핵 무장론을 제기해 왔다. 명분은 그때그때 변했지만 목표는 핵무기의 보유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검토한 적은 한번도 없다.
●원조 보수강경파 나카소네 재등장?
아베 신 정권의 발족을 앞두고 다시 주목되는 것은 올해 88세인 나카소네 전 총리의 행보이다. 당에 대한 혁혁한 공로를 인정 받아 중의원 선거에서 종신 비례구 1번을 부여 받았지만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의해 강제로 정계를 은퇴해야 했던 그는 아베 장관의 부상과 함께 다시 존재감을 회복했다. 자민당 관계자에 따르면 아베 장관에 대한 나카소네 전 총리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아베 장관에게 나카소네 전 총리는 아버지 신타로(愼太郞)를 외무성 장관으로 발탁해 준 은인이다.
또한 아베 장관의 정권구상은 나카소네의 복사판이라고 할 정도로 정치적 영향을 받아 왔다. ‘헌법개정의 노래’를 만들어 발표할 정도로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개헌을 부르짖어 온 나카소네 전 총리는 교육기본법 개정과 야스쿠니 참배, 자학사관 수정 등을 앞세워 ‘전후 총결산’을 추진했던 원조 보수강경파 정치인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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