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파행은 이 나라 헌법기관들이 얼마나 헌법과 법률 절차를 가벼이 여기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 주었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 후보자를 이상한 방식으로 지명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헌법 111조 4항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못박았다. 또 지난해 7월 개정된 국회법 65조 2의 2항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한 헌법재판관도 소관 상임위의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헌법재판관직을 사임한 '일반인'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곧바로 지명할 수는 없었다. 관련 법규정을 느슨하게 해석하더라도 최소한 헌법재판관과 헌재소장 지명은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뒤늦게 전 후보자의 경우 대통령이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으로 동시에 지명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군색하기 짝이 없다.
우선 임기 6년을 온전히 누리는 헌법재판관으로 삼기 위해 금방 사임한 사람을 다시 그 자리에 앉히겠다는 발상은 합리성을 결여했다.
국회에 제출된 헌재소장 임명동의 요청안을 급히 '인사청문 요청안+임명동의 요청안'으로 바꾼 것은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이 사후 합리화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전 후보자를 지명하려는 생각에 빠져 법관 출신인 대통령과 주변 법률가들이 모두 헌법과 법률에 눈을 감았다.
최종적 헌법 해석권을 가진 헌법재판소의 장이 되겠다는 전 후보자조차 아무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우려와 실망은 더하다. 전 후보자는 임기 문제로 사직서가 필요하다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전화를 받고 그대로 따랐다고 했다. 민정수석의 전화 한 통으로 헌법기관의 장을 지명하는 청와대의 소홀한 자세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런 모습이 국민을 실망시키고, 헌재의 권위를 흔든다. 이 문제는 국회가 정치적으로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국민의 준법의식을 후퇴시킨 헌법기관의 법 짓밟기가 더 이상 있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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