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한 여성 무용가가 ‘애프터 에로스’(After Eros)라는 무대를 통해 던진 충격의 여파는 길었다. 감지될 듯 말듯 지나치게 느린 동작으로, 몸을 붓삼아 신비로운 조형들을 그려가던 그녀의 육체는 완전 나신이었다. 때마침 연예인들의 누드 화보집 발간이 유행처럼 번지던 상황과 맞물려, 그 사건은 그 해 주요 포털들이 뽑은 ‘올해의 문화계 10대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현대음악의 대가 필립 글래스의 작품을 배경으로 ‘애프터 에로스’라는 문화적 충격을 선사한 주인공, 상식을 거부하는 미국의 현대무용가 모린 플레밍(52ㆍ사진)이 새 작품으로 한국과 만난다. 8일 오후 7시30분 서울예술대학 안산캠퍼스는 그녀가 펼칠 ‘넌버벌 워크샵 공연’의 열기로 깊어가는 가을빛이 무색할 전망이다. 나체 공연 등 후배 무용가들을 무색케 하는 도발적 시도, 동서양 문화의 접목 가능성에 대한 모색 등으로 그의 무대는 언제나 화제가 따랐다.
그는 지난 7월 이 대학의 무용과 초빙 교수로 남편 크리스 오도(52ㆍ경극 배우)와 함께 한국에 거주하면서 알게 된 한국 무용과 음악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이번 무대의 1부에서 발표되는 ‘인생의 나무’, ‘불멸의 암시’ 등의 신작에는 사물놀이 음악을 기저에 깔고 한국적 춤사위 등이 적극 구사된다.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영상을 배경으로 삼는가 하면, 무대 바닥에 물을 얇게 깔아 신체의 움직임과 파동의 변화를 시각화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이는 “한국적 유산을 소재로 한 작업을 본격화하고 싶다”는 본인의 뜻에 다른 것이다. 2부는 그가 이전부터 천착해 온 일본 무용 부토(舞踏ㆍ2차 대전 후 일본에서 시작된 현대무용 장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플레밍 테크닉’이 소개된다. 혹독한 신체 훈련과 다양한 상상력이 빚어낸 몸놀림이다.
서울예술대학이 해외 유명 예술가를 초청, 국내에 머물며 연구ㆍ지도하는 ‘레지던스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그의 공연은 연극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공개된다. 이 학교 연극ㆍ연기과 재학생들이 교내 나동 제1 공연 스튜디오에서 공연한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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