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자루만한 길이의 양초. 불을 붙이면 줄어들기 시작한다. 재깍재깍 시간이 흐르면 손가락만 해지다가 결국 사라져 버린다. 초가 타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초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흘러가버린 시간을 눈으로 가늠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음식에도 있으니 바로 숙성 식품이다. 김치나 치즈와 같이 발효를 시켜야만 제 맛이 나는 음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맛으로 세월을 보여준다. 촛불처럼 사라지는 맛이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맛으로.
와인처럼(다른 과일로 만든 술도 마찬가지) 과실주는 시간이 덧입히는 프리미엄을 제대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봄에 담근 산딸기술은 지금 맛을 보면 떨떠름하지만 내년에는 매끈할 것이다. 기다릴수록 맛이 좋아지지만, 제대로 맛을 보기위해 기다리는 동안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단점이 있다.
나이를 먹고 맛보는 과실주는 기다려 준 세월만큼 익을 대로 익어서 그 인내심이 아깝지 않은 맛으로 보답한다. 술을 담가 본 사람들은 그래서 술을 사서 마시지 못한다. 자식이 크듯 올해 다르고 내년에 또 다른 그 맛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세월을 키우는 맛!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작년 가을에 담근 오미자술과 무화과주를 벌써 꺼내어 본다.
♡ 무화과 주
작년 가을, 남편과 함께 다녀온 남도 길에 무화과를 잔뜩 사왔었다. 목포 역 앞의 손수레마다 수북이 쌓여 있던 무화과는 보기에도 너무 매력적이었다. “무화과 달아요?” 지나가는 말로 물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그냥 하나 맛보라면서 손에 쥐어 주셨다. 손으로 반을 갈랐더니 속살이 부드럽게 익어서 잘 졸인 과일잼 같다. 한 소쿠리 달라고 했고, 두꺼운 박스에 잘 포장해서 서울까지 모셔오게 된 것이었다.
오자마자 나는 야단법석, 빈 통을 찾아 씻고 뭐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깊숙한 통에 무화과를 잘 씻고 닦아서 넣고 막술을 부었다. 그 후로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봄 한 번, 여름 한 번 남도에 더 갔었지만 무화과는 볼 수 없었다. 기다리던 과일 맛이라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일 년 만에 술독을 열어 보았다. 으앙, 독하다. 빛깔도, 풍기는 술 향기도 고급 양주와 비슷하다. 쫄쫄 따라서 맛을 보니 생각 했던 것 보다 독하긴 한데, 그 가운데로 은은한 단 맛이 풍겨 오른다. 아주, 고급스럽다. ‘무화과 향’ 첨가가 아닌, 무화과가 절로 스륵 녹아 만들어낸 향기라서 진정성이 있는 맛이다. 뻥이나 흉내가 아닌, 정말 멋진 맛이다.
사실, 무화과술을 처음 맛 본 곳은 성균관대 앞에 있는 어느 커리 집. 이란 분인 사장님이 권하셔서 맛을 보게 되었는데, 그 곳의 무화과술은 담근 세월이 길어서인지 아주 달고 유연한 맛이었다. 물론 알코올 도수는 셌지만 말이다. 맵기로 소문난 그 집의 커리를 후후 불어가며 먹다가 달큰하고 진한 홈 메이드 과실주를 한 모금 마시면 뜨끈한 덩어리가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커리의 잔맛을 싹 잊게 해줬다. 내가 담근 무화과술이 그런 세련미를 갖추려면 1, 2년은 더 두어야 하나 어쩌나 싶다.
♡ 오미자 주
지금 이 원고도 오미자주 한 잔을 곁에 두고 쓰고 있다. 취중원고라고나 할까? 후훗. 무화과술은 다소 설익은 맛이 나서 의기가 소침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담근 오미자주의 뚜껑을 열면서 힘을 얻었다. 쌉싸래한 오미자 특유의 향미가 병목으로 훅 올라오면서 식욕을 부른다. 이 술을 보면 웃음이 난다. 주조 당시의 에피소드가 생각나서다.
본래 나는 알알이 붉은 생오미자를 손에 넣었길래 오미자청을 담그려 했었다. 큰 통에 황설탕과 오미자를 켜켜이 쌓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걸려온 지인의 전화라 바로 끊지를 못하고 통화가 길어지게 되었는데, 통화가 끝나고 부엌으로 돌아왔더니 그 통에는 소주가 부어져 있었다. 남편의 소행. 그가 말하기를 “오미자를 통에 담고 있길래 술 담그는 줄 알고 도와주려 한 거지. 내가 그 사이에 설탕이 있는 줄 어찌 알겠소?” 했다. 그냥 웃을 수밖에.
‘어떻게 되겠지…’하면서 지하실에 두고는 잊고 있다가 이번에 무화과랑 같이 꺼내왔다. 그런데 설탕이 들어가서인지 맛이 아주 좋은 것이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내가 담근 무화과술보다 그가 담근 오미자주가 훨씬 맛이 들었다. 기다란 잔에 따랐더니 발그스름한 빛이 돌면서 아주 매력적이다. 서양식 정찬을 준비할 때에 식전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고.
그렇게 더웠던 여름이 벌써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세월이 간다는 것은 이렇게 사기 맞은 것 같이 황당하고 허무한 것이다. 지난 저녁, 찬바람 한 점이 휙 불었더니 “그렇게 덥다가 어쩜 이러니, 어쩜 이럴까”라며 씁쓸하게 말씀하시던 친정 엄마. 엄마랑 같이 설익은 무화과술을 나눠 마시며 “나도 그래, 세월이 무서워.”라고 하면 엄마는 웃으실까?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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