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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서울 주택가를 덮친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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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서울 주택가를 덮친 '괴물'

입력
2006.09.0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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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서점' '학사당구장' '고모집' 등으로 유명했던 고려대학교 정문 앞 동네,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2동 어르신들이 4년째 마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들이 싸우는 상대는 재개발이라는 괴물이다.

이 괴물은 평범한 시민들이 수십년 동안 정붙여 살고 있는 집과 골목과 역사를 삼키고 이곳에 고층아파트를 세우려 한다. 마을 주민들이 3년 동안 싸워도 괴물은 끄떡도 않는다. 막강한 건설업체와 컨설팅업체가 괴물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여든 두살의 김씨 할머니. 황해도 출신인 그는 1.4 후퇴 때 피난 내려와 부산에서 3년간을 산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기동에서 살아왔다. 4남매를 시집 장가보낸 곳도 대지 40평의 살림집에서였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남편의 퇴직금으로 3층짜리 원룸주택을 올렸다. 대학생들한테 방을 빌려주고 양주가 노후를 즐기니 다복했다. 일흔 넷인 정씨는 59년에 제기동에 왔고, 예순여섯인 서씨는 56년에 왔다. 예순인 성씨는 69년에 제기동에 왔다. 전세집을 전전하다가 10년만에 30평짜리 내집을 마련했고 97년에는 원룸형 3층 주택으로 이사했다.

대지 31평짜리. 2000년에 남편을 여읜 그는 이 집이 사라지면 자식들한테 의존해야 할 판이다. 수십년 동안 방많은 단층 하숙집이 원룸형 저층건물로 바뀌었을 뿐 집은 이들에게 살림집이자 소득원이고, 대학생들 입장에서는 값싼 기숙사였다.

● 노후 즐기자는 꿈이 거품으로

1998년에 이곳이 재개발예정지역으로 처음 고시될 때만 해도 주민들 모두가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퇴락해가는 동네가 번듯해진다면 좋겠다고 환영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주변에서 본 재개발은 그렇게 좋게 끝나지 않았다. 토박이들은 동네를 떠나고 고층아파트에 어울리는 새로운 사람들이 마을을 구성했다.

있는 돈 쏟아부어서 겨우 원룸형 건물을 지었는데, 재개발이 되면 대지 평수에 따라 아파트 한 채를 받는 것도 억울했다. 건물보상가는 턱없이 낮고 아파트 분양가를 부담하다 보면 손해였다.

단층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재개발에 희망을 걸기도 했다. 주민들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재개발을 부추기는 컨설팅업체가 들어왔다. 업체의 지원으로 이 지역에는 2003년에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재개발추진위)가 구성됐다.

재개발에 찬성하는 사람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도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재개발추진위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집중된 큰길쪽 27가구를 제외하고 다시 주민들 의견을 물었다. 그래도 찬성자는 절반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도 추진위는 해산하지 않았다. 해산은커녕 작년 5월에는 건설업체까지 지정했다.

● 독극물 쏟아부은 서울시

일흔 세살인 안씨는 이미 5년 전에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재개발로 쓴 맛을 보고 이리로 옮겨왔다. 아파트의 마지막 분양금을 낼 여력이 없어 30여년 살던 동네를 떠나야 했다. 32평이던 전농동 집은 이곳에서 29평짜리로 줄었다. 그는 "거기서도 주민들 60%가 반대했지만 컨설팅업체가 움직이니까 결국에는 승인이 나더라"며 "여기서 또 겪을 수는 없다"고 했다.

도시 재개발을 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재개발예정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재개발추진위를 만들 수 있다. 재개발추진위는 재개발구역지정을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재개발예정지역에서 20% 정도 범위를 줄여도 구역지정이 가능하다. 주민들의 마음이 재개발 반대로 돌아서도 지역을 조정하면 된다.

수치상으로는 예정지역 주민 40%만 찬성해도 재개발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올 1월부터 이 규정은 더욱 개악되었다. 과거에는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받으려면 재개발추진위가 구역내 주민 3분의 2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서울시 조례가 이 제한규정을 없애버렸다. 포름알데히드를 쏟아 부은 셈이다. 재개발구역이 되면 주택 개보수가 금지되기 때문에 슬럼화가 가속화한다. 결국에는 반대하던 주민들도 손을 들게 된다. 서울시에서 재개발을 추진하는 수백 군데 동네서 똑 같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과거의 재개발은 빈곤층을 몰아냈다. 이제는 중산층까지 몰아낼 판이다. 이 괴물을 누가 잡을 것인가.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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