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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후 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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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후 생식

입력
2006.09.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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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자식이 없었다. 백혈병 환자인 남편은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정자를 냉동보존하기로 했다. 1990년 죽음을 앞두고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재혼을 하지 않는다면 내 정자를 이용해 아이를 낳고, 부모님을 모셔 줘." 아내는 11년 후 남편의 냉동정자로 인공수정 시술을 받고 사내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그녀에게 삶의 희망이자 보람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고민이 생겼다. 아이를 죽은 남편의 친생자로서 호적에 올릴 수 없었다. 사후 양자 제도를 활용할 수야 있었지만 분명한 남편과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하긴 싫었다.

■ 엄마와 아이는 국가에 친생자 인지를 청구했다. 2심까지는 남편의 '생전 동의'를 근거로 청구가 인정됐지만 최종심에서 기각됐다. 현행법이 '사후 생식'을 상정하지 않아 친자관계 인정 여부나 인정할 경우의 요건과 효과가 정해지지 않은 이상 법률상 친자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재판부는 '사후생식'에 대해서는 생명윤리나 태어날 아이의 복지, 친족 등 관계자의 의식, 사회 일반의 인식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보충의견을 달았다. '사후 생식'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촉구한 것으로, 관련 법규정이 없는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를 확립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가 8분할 단계의 인간 배아에서 한 개만 떼어내 줄기세포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큰 걸림돌이었던 생명윤리 문제 가운데 적어도 '수정란 파괴= 잠재적 생명 파괴' 라는 인식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한때 생명윤리 논란이 끝나리라는 기대가 일었으나 떼어낸 한 개도 나머지 7개의 세포와 일란성 쌍둥이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론이 벌써 제기되고 있다.

■ 꼭 인간 생명윤리 문제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제주에서 말을 사육하는 K씨는 자신의 암말을 천연기념물 제주 조랑말로 등록하려다가 부적합 판정을 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만 네 살짜리 이 암말은 DNA 검사에서는 제주 조랑말이 분명했으나 까다롭게 규정된 '외모 기준'에 걸렸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혈통의 최종적 기준인 DNA의 증거력조차 인간의 주관적 인식의 벽에 가로막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차피 인간 사회의 논란은 과학과 사실이 아니라 불가해한 신념이 결정한다는 씁쓸한 생각에 젖는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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