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드컵 축구 대회의 열기가 뜨겁던 6월의 어느 새벽.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상담전화에 40대 남성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펴졌다. “친구가 자살할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제발 도와주세요.” 센터 직원들은 바로 뛰어나가 전날부터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는 A씨를 만났다.
‘왕따’ 문제로 끝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직자가 된 A씨는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살할 위험이 높아 입원을 권유했지만 A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센터 직원들은 “자살해서는 안 된다”며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설득하는 것 외에 강제 입원 등 A씨의 자살을 막을 수단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예감대로 A씨는 이날 오후 서울의 한 여관에서 싸늘하게 식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연간 자살자 1만4,000명, 60대 이상 자살자 2000년 이후 2배로 증가, 자살이 20대 사망원인 중 1위.
자살과 관련해 한국이 갖고 있는 부끄러운 통계들이다. 우리사회에서 자살의 심각성을 웅변하는 이 수치들은 하지만 이미 자살한 사람들이 남긴 ‘죽은’ 기록들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어떤 심리 증상을 겪으며, 왜 자살을 선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두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한국일보는 10일 세계보건기구(WHO)과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세계자살예방의 날’을 앞두고 국내 유일의 자살예방 출동기관인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서울시 위탁기관)와 함께 2005년 1월~2006년 7월 센터에 마지막 ‘구명(救命)’을 호소해 온 자살 상담자 937명을 분석, 자살 예방의 길을 모색해 봤다.
분석 결과, 이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 구성원 간 갈등과 소외감, 외도 등 가족 문제(28.5%)였다. 비관(16.1%) 대인관계(14.7%) 경제문제(13.9%)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상담자가 절반(57.4%)이 넘었고, 10명 중 8명은 우울증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등 자살 징후가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정부와 사회의 의지만 있다면 자살(시도)자를 크게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이명수 센터장은 “청소년의 경우 자살 시도자가 자살자의 30~50배 수준이라는 통계에서 보듯 이제는 더 이상 ‘자살이 심각하다’고 얘기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자살 예방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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