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학의 역사를 통사(通史) 형식으로 정리한 책 ‘한국유학통사’(전3권, 심산 발행)가 나왔다. 젊은 유학자 최영성(44ㆍ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의 역저다. 그는 이미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중반에 원고지 1만 매 분량의 ‘한국유학사상사’를 5권으로 나눠 낸 바 있다. 이번 책은 먼저 책을 뼈대 삼아, 추리고 덧붙이고 거친 데를 다듬어 낸 것이다. 그 작업에만 꼬박 10년이 걸린 것이다.
책 머리에 그는, 사마광이 ‘자치통감’ 294권을 내면서 했다는 말 - 平生精力 盡在此書(평생정력 진재차서ㆍ평생의 정력이 이 책에 다 들어있다) - 을 전하며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선유(先儒)들의 저술을 보면 마치 어떤 책 한 권을 남기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간 것 같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들이 적지 않다.”
책 제목이 전하는 ‘유학’의 의미와 함께, 책 출간의 소회를 묻자 그는 “미진하다”며 말 문을 열었다. “‘한국 유학’이라는 용어는 이 땅 2,700여 년의 학문과 정신과 제도 전체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또 ‘유학통사’라면 학문으로서의 유학사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상사를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결코 한 사람이 욕심 낼 일도 아니고, 욕심 낸다고 될 일도 아니죠.” 그러므로 전3권 2,369쪽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이 책도, 그 질적인 깊이와 무관하게, 턱없이 빈약하다고 그는 말했다.
책의 이름에서 전작(前作)이 달았던 ‘사상’이라는 단어를 떼어낸 것도 이 같은 생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책은, 무식자가 보기에, 방대하고 촘촘한 사상사적 편린들로 하여 빛난다. 책은 한국 역사 전체를 유학의 맥을 통해 가늠하게 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유연하고 체계적이다. 정통 역사서의 시계열을 따르면서, 각 왕조의 건국ㆍ통치 이념들을 정초했을 유학자들의 사상을 고찰하고, 그 사상가들이 당대 역사와 어떻게 교감하며 뻗고 꺾이며 전승됐는지를 실감나게 전한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유학의 학맥을 광복 이후 유교계 재편과 유림 운동, 여전히 생존해 활동중인 유학자 및 유교 사학자까지 이어놓고 있다. 우리 유학이 독자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한 통일신라시대의 유학자 강수, 설총, 최치원에서부터 ‘조선 양명학 연구의 온축 - 윤남한(1922~1979), 한국 유학사 사관 정립의 기수 - 윤사순(1936~), 완정된 유교 통사에의 기대 - 금장태(1943~)’까지 약 220여 명의 유학자들을 책은 이야기한다. 힘겹고 때로는 난처했을 그 작업 과정을 전하며, 그는 슬쩍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1920년대 말부터 우리 유학에 대해 일어났던 ‘국고정리(國故整理)’ 작업의 차원에서 유학사를 갈무리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있고 앞으로도 뻗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어려운 한자 말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옛 글의 번역 인용부 뿐 아니라 저자의 서술부분에서도 潛心玩味(잠심완미)며, 玄虛之道(현허지도)며 하는 아득한 표현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그의 글을 진득이 따라가기란, 작심하지 않고는 자못 힘들다. 이렇게 불평하자 그는 “편히 읽게 쓰여진 대중적인 유학서들도 장점이 있지만, 실상 왜곡이 많고 알맹이가 부실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유학의 정신을 소화하기 편하게 전달하는 책은 제 평생의 과제로 남겨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 과제 가운데에는 유학통사의 재개정판도 포함될 것이다.
그 말에 덧붙여 그는 최근 또 하나의 숙제를 떠안게 돼 고민이라고 말했다. 대학 은사인 유승국 선생(성균관대 명예교수ㆍ학술원 회원)의 주문인데 “과거를 정리하는 책을 썼으니 이제 유학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책을 써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거기에도 욕심이 동하는 듯 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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