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와 둘이 한밤에 센강의 한 다리를 걷고 있었다. (많이 다니지도 않은 외국 얘기를 우려먹으니 보람차다, 없는 살림에 무리했었는데.) (참! 해외 여행과 유학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우리나라 경상수지를 적자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인적이 없는데 대여섯 청년이 마주 걸어왔다. 가까워지면서 그들이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우리는 둘 다 불어를 할 줄 몰라 가볍게 손을 저으며 지나쳤다. 그런데 그가 계속 뭐라며 쫓아오는 것이다. 겁에 질려 걸음을 빨리 하는 우리를 그는 기어코 뒤쫓아 와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의 굳은 얼굴에 대고 그는 당황스런 미소를 띤 채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가만히 보니, 한 손은 입에 문 담배를 쥐고 다른 손은 엄지와 검지를 마찰시키는 시늉을 했다.
라이터를 좀 빌리자는 거였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라이터를 돌려주며 살가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성큼성큼 제 일행에게로 갔다. 마음을 놓은 뒤 보니 매력적으로 선량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그가 굳이 우리를 쫓아온 것은 누명을 벗고 싶어서였을 게다. 사소한 용건이었을 뿐인데 우리가 위협감을 느끼니까, 스치고 말 사람들이라도 오해를 풀고 싶었나 보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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