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오징어는 옛말 이랑께~. 이젠 흑산 오징어라고 불려 주쇼~"
4일 오후 9시 전남 신안군 흑산도 앞 바다. 진도군 서망항에서 오징어 채낚기 어선을 타고 6시간 넘게 항해한 끝에 도착한 밤 바다는 소문대로 어선들로 북적 됐다. 전남 서남해역의 '오징어 황금어장'은 밤을 잊은 불야성이었다. 50척이 넘는 오징어 배들이 일제히 집어등(集魚燈)을 켠 채 오징어 잡이를 하느라 칠흑 같은 밤 바다가 대낮처럼 환했다.
낚시줄 던질 곳을 찾아 오징어 배들 사이로 들어서자 '드르륵 드르륵' 하는 낚시줄 오르내리는 소리에 장단을 맞춰 흥얼거리는 어민들의 콧노래가 사방에서 흘러 나왔다. 낚시줄을 던지는 족족 오징어가 걸려 올라와 그만큼 신이 났기 때문이다.
●흑산군도는 물 반 오징어 반
45일째 이 곳에서 오징어 잡이를 하고 있는 부산선적 28톤급 금광호 선원 이정택(40)씨는 "흑산도를 포함한 흑산군도 해역은 말 그대로 물 반 오징어 반"이라며 "어제도 오징어 450상자(상자 당 20마리)를 잡는 등 지금까지 1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해안 대표 어종인 오징어가 전남 서남해역에서 사상 유례 없는 대풍어를 맞고 있다. 서남해의 경우 바다 수온이 오르면서 흑산도와 우이도 인근 해역이 오징어 떼로 넘쳐 나고 있다. 반면 동해안은 수온 저하 등으로 어장이 형성되지 않아 오징어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징어 황금어장으로 떠오른 흑산해역은 오징어를 찾아 서해로 원정 조업에 나선 동해안 지역 오징어 잡이 배들까지 가세해 최대 규모 어장이 형성됐다. 전에는 오징어 구경하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오징어만 보이는 것 같다. 이 곳에서는 매일 300척이 넘는 어선들이 오징어를 낚아 올리며 매번 만선을 이루자 파시(波市)까지 생겼다.
실제 8월 한달간 진도수협 서망지소의 오징어 위판액은 15억원(20만 상자)에 달했다. 지난해 오징어잡이철(8~10월) 어획고(5억원)보다 3배나 많은 '오징어 대박'이 터진 셈이다. 게다가 위판장에 입고되지 않고 바로 파시를 통해 활어상태로 팔려나간 오징어가 전체 어획량의 3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어획량은 이를 훨씬 웃돈다.
●풍어도 좋지만 생태계에 무슨 일이?
서해안 오징어는 별미다. 동해산보다 살이 통통하고 육질이 쫄깃쫄깃하며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게다가 심한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기생충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이처럼 흑산도 해역이 오징어 어장으로 거듭난 것은 무엇보다 오징어가 서식하기 좋은 어장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우선 올해 여름 서해안 일대에 수온이 상승하면서 난류대가 형성된 것이 오징어들을 끌어들이는 데 크게 작용했다. 또 동해안 수온이 평균 0.5~2도 낮아진 데다 대규모 중국 어선들이 북한 동해 수역에서 싹쓸이 조업을 반복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부산선적 43톤급 우진호 선장 김양근(54)씨는 "지난해 중국어선이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동해 북한 해역에서 싹쓸이식 조업을 하면서 오징어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해안 오징어 풍어가 바다 생태계의 이상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미 서남해안은 올해 들어 홍어와 꽃게, 병어 등 난류성 어종들이 사상 유례 없는 풍어를 이루면서 어류의 '생산지도'가 바뀌어 가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서해안에서 수온변화에 민감한 회유성 어류의 어획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는 명태와 같은 한류성 어종은 구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흑산도=글ㆍ사진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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