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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본질 벗어난 아나운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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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본질 벗어난 아나운서 논란

입력
2006.09.0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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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상파 방송사 아나운서들의 거취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우리 사회의 미디어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인터뷰어로 인정받던 MBC의 손석희 아나운서가 대학교수로의 전직을 발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SBS 김주희 아나운서는 미스 코리아로 선발된 뒤 아나운서가 돼 사람들의 주목을 받다가, 아나운서의 신분으로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함으로써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뉴스가 아닌 각종 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인기를 끌던 KBS 노현정 아나운서가 소위 '재벌가의 며느리'가 됨으로써 화제가 된 바 있다.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현재 우리의 일상 속으로 미디어가 침투해 있는 정도를 고려해 볼 때 아나운서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논란의 와중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야 마땅할 '전문 직업인으로서 아나운서의 입지와 그 직업적 미래에 관한 진지한 논의'는 오히려 뒷전으로 물러나고, 대부분의 논의가 매우 자극적인 톤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다수의 미디어는 나름대로의 여과 기능을 수행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 이슈들을 프레이밍(framing) 하기는커녕, 짐짓 모른 척 뒷짐을 지고 기존의 논란을 재생산하거나 심지어 강화하는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김주희 아나운서를 둘러싼 논란의 경우, 아나운서가 미인대회에 참가할 경우 감수해야 할지도 모를 아나운서로서의 신뢰성 훼손이라든가 여성의 성(性) 상품화라는 본질적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의 여자 아나운서가 미인대회에 나가서 수영복 심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대중들의 관심사가 되자, 정작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디어는 이에 대한 어떠한 판단이나 입장 표명을 생략한 채 인터넷을 통해 수영복 입은 미스 코리아 출신 아나운서의 사진을 실어 나르기에 바빴다.

노현정 아나운서의 경우도 대다수의 미디어는 여러 프로그램 장르를 넘나드는 아나운서로서 그가 이룬 성취나 진행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평가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대중적 인기만을 부각시키고 재벌 2,3세나 성공한 기업가와 결혼한 전직 아나운서 및 연예인과 끊임없이 비교함으로써 그를 흥미로운 가십의 대상으로 다루는데 진력했다.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담론화하는 미디어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여기에는 우선 여자 아나운서와 남자 아나운서를 달리 바라보고 다른 잣대로 재단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적 시선이 들어있다.

손석희 아나운서의 경우 그가 방송을 떠나게 되면 MBC가 입게 될 유형무형의 손실이라든지 그의 '전문성'이 논의의 초점이 되었지만, 두 여자 아나운서의 경우는 이와 달리 그들의 '여성성'과 결부된 '육체'와 '결혼'이 부각되었다.

또 한 가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나운서의 'TV 퍼스낼러티'(TV personality)로서의 자리매김과 관련된 문제이다. 두 여성 아나운서의 경우에서 보듯, 아나운서들이 다른 프로그램 장르 또는 방송 이외의 다른 영역에 진출할 경우 전문 앵커, 진행자 또는 인터뷰어로서 자기 경력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거나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시킬 위험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현정 아나운서를 비롯한 몇몇 아나운서가 보도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이제는 아나운서도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하는 시대'라는 잘못된 인식이 아나운서들 사이에 점차 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한 방송사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TV 퍼스낼러티'로서, 말하자면 한 방송사를 대표하는 보도교양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자리매김 하기 위해, 아나운서들 스스로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그리고 '탈장르화'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지고 있는 각종 에듀테인먼트,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자제하고 자신들의 고유 영역과 전문성을 굳건하게 지키고 키워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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