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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내 영화는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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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내 영화는 쓰레기다"

입력
2006.09.0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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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발언이 따라가기 숨차고 고통스럽다. 어법은 직설적이고 공격적인가 하면, 신경질적이고 울분으로 처절하다. 그는 최근 영화 '괴물'을 비틀었다. "한국 영화의 수준과 한국 관객의 수준이 최고점에서 만났다. 이는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에서 더 이상 자신의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 발언에 분명한 메시지는 있다. 그것은 타성에 젖은 우리의 무신경을 건드리고 나태를 나무란다. 그 말은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지적한 우리 영화계의 통점(痛點)에 가 닿는다.

봉 감독은 "작은 영화를 위해 마이너리티 영화 쿼터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으로 부상한 김 감독과, 대박을 터뜨리며 영화계의 총아로 떠오른 봉 감독의 문제의식은 다르지 않다.

● 김기덕 감독의 자학적 발언

'괴물'은 1,600개 스크린 중 600개 이상을 차지하면서 개봉 38일 만에 국내 역사상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반면 김 감독의 새 영화 '시간'은 전국 12개 영화관에서 조촐하게 상영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계속 고배를 마셨다. '활' 관객은 1,634명이었다. 외국의 반응은 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미국에서 32만 명이 보았다. 또 '빈집'은 프랑스 독일에서 각각 20만 명이 관람하며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시간'도 30개국에 수출됐다.

우리의 영화적 감수성은 외국인과 그렇게 다른가? 문학 음악 미술 등 다른 장르를 보면, 지역 간 예술적 안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성취가 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의 성공이었다면, 국내의 출판사나 기획사, 화랑 등이 그를 앞 다퉈 초대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예술적 '낯섦'은 대체로 참신함으로 수용되곤 했다. 낯섦을 징검다리 삼아 새로움으로 건너뛰며 발전한 것이 우리 문화다.

짧은 기간에 많은 관객을 보장 받고자 하는 영화관의 생리는 낯선 작가주의를 환영하지 않는다. 현재로서 극장주가 추구하는 상업주의와, 작가주의 예술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처럼 영화적 다양성이라는 내부적 성숙도 없이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상황이어서 더욱 걱정이다. 인기 영화에 영합하는 쏠림이 더 기승을 부리고, 실험적 영화는 설 땅이 좁아질 개연성이 높다. 할리우드 영화나 대자본 영화의 물량공세 속에, 영화계가 다양성과 활력을 잃고 쇠퇴하지는 않을까.

두 감독의 고언이 있은 후 동조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큰 영화와 작은 영화, 오락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해야 한다. 영화 당 300개 스크린을 넘지 못하게 제한하거나, 복합 상영관의 3개 관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상파 TV를 대상으로 하는 시청자 주권운동이 있다. 작은 영화 보호를 위해 이와 유사한 운동도 기대할 만하다.

영화에 대한 반성이 싹틀 무렵, 김 감독의 사과가 다시 한번 충격을 주었다. 자위적인 자신의 영화를 예술영화라는 탈을 씌워, 숭고한 한국의 예술영화와 영화 작가를 모독한 점을 깊이 사죄한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의 적의에 찬 댓글에서 잇달아 상처를 받은 그는 자신의 영화가 모두 쓰레기라고도 했다. 한국 관객의 진심을 깨닫고 조용히 한국 영화계에서 물러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끝을 맺었다.

● 영화계에 던져진 성찰의 계기

100석쯤 돼 보이는 '인디영화관'을 겨우 찾아서 본 '시간'은 그의 또 다른 미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과 '빈 집'보다 세상에 대한 해석과 유머가 깊어지고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김 감독은 이번에 성마른 자신의 발언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새삼 충격을 받은 듯하다. 반성은 필요하나 과민해도 안 된다. 대중의 반응에는 늘 애증이 섞여 있다. 그러나 영화계로서는 자학과 부끄러움 속에 던져진 김 감독의 고언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박래부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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