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내전인가, 아닌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 물음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중간선거를 두 달 앞둔 지금은 그렇다. 이라크 땅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보다는 이라크를 선거에서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 부시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이다.
2002, 2004년 두 번의 의회선거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공화당은 ‘강한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하는데 성공했고, 민주당은 도망치기 위해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겁쟁이’로 전락했다. 그러나 9ㆍ11 테러 5주년을 앞두고 이라크의 민주화는커녕 종파간 분쟁이 점점 더 내전 양상으로 폭력화 하자 미국 유권자들도 부시의 대 테러전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정치선동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의 대 테러전에 대한 최근 발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연차총회에서 이슬람 급진파를 “파시스트와 나치, 공산주의자 등 20세기 전체주의자들의 후예”라고 부른 뒤 “미국은 민주주의 발전을 후퇴시키려는 과격 이슬람 세력에 맞선 21세기의 결정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10일 영국발 미국행 항공기 폭파 음모가 발표된 직후에도 “이슬람 파시스트들과의 전쟁”이란 표현을 써가며 처음으로 대 테러전을 ‘이념전쟁’으로 격상시켰다. 중간선거를 안보카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부시 정부로서는 약효가 다한 ‘테러와의 전쟁’ 대신 보다 강력한 수사(修辭)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라크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판에 박힌 발언 대신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할 경우 초래될 ‘심각한 결과’를 경고하는 쪽으로 부시 대통령의 논평이 바뀌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뉴욕타임스는 “점점 강도를 더해가는 부시 정부의 레토릭(rhetoricㆍ수사)이 베트남전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들고 나왔던 ‘공산화 도미노 이론’을 연상시킨다”며 “구체적인 계획 없이 공포심만을 조장하는 전략이 또다시 먹힐 지는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을 성공보다는 실패했을 경우 생길 위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는 1일 “이라크 폭력사태가 종전 수니파 저항세력의 무력투쟁에서 소수 수니파와 다수 시아파 간 종파분쟁으로 옮아가는 등 내전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과는 다소 다른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재 상황이 내전은 아니지만 2003년 개전 이래 가장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이다.
부시 대통령의 새 안보 화두가 어느 정도 먹힐 지 알 수 없으나 실패한 대외정책이 다시 유권자의 민심을 얻기는 극히 어렵다는 것이 과거 미국 외교의 교훈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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