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공약이 우리에게 커다란 우려를 안겼다. 한일 관계 회복의 기대를 무너뜨린 것은 물론 동북아 전체의 정세 안정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의 공약은 사실상 차기 일본 정부의 공약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라는 제목과 달리 공약 어디에서도 주변국과 평화와 번영을 나누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강하게 자기주장을 펴고, 아이들이 그런 정부의 자세에서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교육 받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만 떠오른다.
우리 눈은 우선 ‘전후 체제 탈피’와 ‘새로운 헌법의 제정’에 쏠린다.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도 가능한 ‘보통 국가’로 가겠다는 일본 보수파의 구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정서적 거부감과는 별도로 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이 흐른 만큼 어느 정도의 변화는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보수 강경파의 퇴행적 이데올로기로 색칠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전후 체제 탈피’는 그런 퇴행적 이데올로기의 대표적 표현으로, 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패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역사 정당화 주장이다.
또 ‘헌법 개정’을 굳이 ‘새로운 헌법의 제정’이라고 표현, 이데올로기 냄새를 짙게 했다. 국가주의ㆍ민족주의 교육 강화로 이어지게 마련인 교육기본법 개정 약속과 묶으면 마치 100년 전의 역사를 다시 보는 듯하다.
외교 공약은 더하다. 한중 양국과의 ‘신뢰관계 강화’는 형식적으로 언급했을 뿐이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 “가느냐 마느냐를 외국이 따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고, 정상회담 재개에 대해서는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까지 달았다.
특히 ‘주장하는 외교’ ‘강한 일본, 의지할 만한 일본’을 내세우면서 “가치관을 공유하는 구미와 호주, 인도와의 전략대화”를 강조한 데서는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의 현대적 변종을 보는 듯하다. 한중 양국은 건너뛰고 싶다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대중 포위망 강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동북아 정세의 새로운 불안 요인이 되고도 남는다.
따라서 정부와 국민은 일본에 대한 우려와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한중 양국의 대일 반감이 일본에 좋은 빌미를 주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적어도 그렇게 주장되고 있고, 그런 주장에 공감하는 일본 국민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악영향만 주고받는 ‘민족 자긍심’을 강조하는 기개보다 금도와 지혜가 절실한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