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을 이끌고 있는 미국과 영국에서 테러 척결을 명분으로 인권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9ㆍ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법적 근거로 미국과 영국이 각각 제정한 애국법과 반테러법은 서구의 기본 가치인 인권을 침해하고 위헌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애초부터 제기됐으나, 미ㆍ영 정부는 아랑곳없이 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애국법과 반테러법이 테러 위협이 사라지는데 기여하기는커녕 무고한 시민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8월31일자)에서 지적했다. 특히 아랍인과 무슬림 사회가 자신들을 겨냥한 차별적 법안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서 일어난 인권 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미 당국은 애국법에 근거해 사적 통화 감청, 이메일 검열은 물론 도서열람, 은행거래, 진료기록까지 감시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국가안보국의 영장 없는 도청 프로그램의 합법성을 주장한 근거도 애국법이었다. 오히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는 수백명의 무슬림 외국인들을 테러 용의자라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수감ㆍ고문해 인권 유린이라는 비판만 낳았다.
4월 개정된 영국의 반테러법은 법원으로부터 인권법과 상충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개정 반테러법은 테러용의자는 기소 없이 최대 28일까지 구속할 수 있고 테러를 찬양하기만 해도 범죄가 된다. 지난해 7ㆍ7 런던 테러 이후 위기감이 높아진 영국에서는 테러 방지를 위해 자유 등 인권을 대가로 치르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존 리드 영국 내무장관은 지난달 공식석상에서 “장기적으로 테러리스트에 의한 자유의 남용과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우리 자유의 일부를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시민권 제한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미국과 영국의 테러 대응이 국가권력과 시민권의 관계에 퇴보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브루스 애커먼 예일대 법대 교수는 최근 저서 ‘다음 공격이 오기 전에(Before The Next Attack)’에서 영국은 경찰국가로, 미국은 대통령 전제정치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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